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방갈리 산120번지. 이곳은 28년 전 내가 군에 입대하여 경기도 가평에서 기본훈련을 마친 후 초병으로 자대배치를 받고 꼬박 27개월의 젊음을 불사르며 병역을 마쳤던 추억의 땅이기도 하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한번 내 아이들과 꼭 찾아보리라 맘먹었건만 세월은 흘러 그 초병은 이미 중년의 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동해안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섬들로 둘러싸인 빼어난 절경과 해변의 쭉 뻗은 솔밭 풍경. 통신보안상 우리부대의 호출명으로 사용되었던 '학암포'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말단 초병의 신분을 벗어날 즈음이었고 바로 그곳이 말로만 들었던 국립공원 태안반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쑥색의 군복에 제법 익숙해 질 무렵이었다.

그 후로 세월은 흘러 거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 그 초병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태안 앞 해상에서 국내 기름 유출 사상 최대의 원유가 유출된 선박사고가 발생했다. 사상 최악의 해양 오염 사고로 태안 앞바다는 해넘이와 해돋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예년과는 달리 기름띠를 제거하기 위한 인간띠 자원 봉사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이는 언론을 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찾아 가리라는 희망이 이렇게 내게 절망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그런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야 다시 시작되는가 보다.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에서도 그 행렬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모아, 난 우선 태안군에 설치된 재난본부에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학암포 일대를 자청하게 되었고 드디어 출발하기에 이른다.

사고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이른 새벽, 시청광장은 마치 자이툰 부대로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이라도 하듯 북새통이다. 난 무기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버스 트렁크에 챙겨 넣었고 인원점검까지 완료했다. 참가자 모두의 눈빛에선 그곳 주민들에게 소모품 하나라도 부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여 도구들을 철저히 챙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장장 6시간을 달려 28년 만에 돌아 온 학암포! 긴 세월 동안 이리저리 도로가 뚫려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격장이 있었던 그 산과 초소 앞의 작은 섬들은 기나긴 시간 동안 내게 있어 빛바랜 그림처럼 가슴 속 깊이 배어 있었던 풍경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아름다움을 뽐냈던 바닷가의 백사장은 검은 빛으로 변한 채 28년 전의 그 초병을 말없이 대하고 있었다. 입원실에 누워 힘없이 아빠의 얼굴을 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아이의 눈빛처럼….

먼저 재난본부 학암포 상황실에서 간단한 설명과 절차를 마치고 포구로 이동하여, 준비해온 도구를 꺼내 줄지어 앉아서 바위와 자갈 등에 묻어있는 기름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 모두는 사람들이 불러온 이 크나큰 재앙 앞에 숙연해 지는 듯 말이 없었다.

첫날 일과를 마치고,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내가 근무했던 부대주변과 건너편에 있었던 당시의 원북초등학교 학암포분교를 찾아 갔다. 그곳은 지금은 폐교가 된 채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팔팔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교정은 어느 덧 은퇴를 한 듯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학교의 담은 바람이 많은 동네답게 돌로 아기자기하게 둘러쳐져 있었으며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인지 풀들이 웃자란 채 추운 겨울을 맞고 있었다. 마치 에밀리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보는 듯 주변의 분위기는 스산하기만 했다. 저 멀리로 사람들이 풀어놓은 검은 염소들만이 조용히 오고간다.

아! 학암포여, 언제라야 그 청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개를 떨군 채 외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곳 사람들의 삶이 애잔해 보이지만 부디 역경을 딛고 학암포의 삶을 꿋꿋하게 이어나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임건호 울산지검 환경보호위원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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