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햇벌 겨울이 채 녹기도 전에 미칠 것의 작은

 새 종달새가 솟고 있다, 한 번 솟아올라 날개를

 펴고 봄이 오나 봄이 오나 봄을 보고 내려 앉는 것

 이 아니라, 떨어지고 떨어지는 순간순간 다시 솟아

 오른다, 난다, 솟는다. 아니 그보다 부딪친다. 부

 숴진다 싶게 솟는다.

 종달새는 왜 솟는가? 보리 시퍼레 돋고, 과목들

 도 빨갛게 눈을 떠서 올해도 양식은 메울 것이고,

 갯버들 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철쭉 개나리 서둘러

 피어 남풍은 소매 끝을 녹이는데, 종달새 작은 새

 피울음 울며 너는 왜 솟기만 하는 것이냐? 부딪치

 느냐? 부숴지느냐?

 털어도 털어도 먼지 한 알로 손 바닥에 남는 미

 칠 것의 작은 새 종달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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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멀리 뛰어서 솟아오르는 종달새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

 종달새가 솟아오르는 것은 봄이 오는 것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는 순간 다시 솟아오르는 본능의 몸짓을 시인이 본 것이다. 시인은 이 상승하는 종달새를 통해 본능을 응시한 것이다. 본능이라고 할 때 "보리 시퍼레 돋고, 과목들/ 도 빨갛게 눈을 떠서 올해도 양식은 매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종달새가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는 순간 느껴지는 불안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응시한 것이다. 그 불안을 떨치는 인간의 행위를 종달새가 "떨어지고 떨어지는 순간순간 다시 솟아/ 오른다, 난다, 솟는다."는 몸짓을 통해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종달새 작은 새/ 피울음 울며 너는 왜 솟기만 하는 것이냐? 부딪치/ 느냐? 부숴지느냐?"라고 시인은 절규하고 있다.

 솟기만 하는 작은 종달새의 본능인 부딪치며 부숴지는 불안과 공포의 상황을 시인은 응시하고 있다. 시인이 멀리 뛰어서 본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위험스러운 비상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응시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인간의 왜소하며 고독한 존재를 종달새를 통해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인간의 근원적 불안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불안한 존재인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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