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채우기면 어때, 일단 팔 걷어"
문서정리·청소등 단순 업무 넘어
체계적 교육 뒤엔 봉사활동 참 맛

자원봉사활동에는 항상 희생이 따른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고 굳이 흘리지 않아도 되는 땀도 흘려야 한다. 알뜰살뜰 모아둔 돈이 나갈 때도 있다.

봉사자들의 이런 희생이 아름다운 것은 나눔의 실천을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학교, 집, 학원을 오가며 하루 종일 공부하기 바쁘다. 한 번 시간이 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때문에 그 중 일부를 봉사활동에 할애하는 것은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은 시간채우기라 할 지라도 귀하다. 시간채우기로 시작한 봉사활동도 제대로 된 교육과 프로그램이 뒷받침되면 결국 재미를 들이는 것이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22일부터 26일까지 4박5일동안 동구 남목청소년문화의 집(관장 전인석)은 '나누리학교'라는 청소년 자원봉사학교를 개최했다.

처음 실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4명의 청소년들이 모두 4박5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알토란 같은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을 들여다보자.

◇남목청소년문화의 집, 나누리학교

나누리학교는 4박5일동안 다소 빡빡한 일정으로 짜여졌다.

첫째 날에는 자원봉사 관련 기초 교육을 받았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니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지루한 시간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눈을 감고 듣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장애체험 등 역지사지 게임, 봉사활동 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주제로 한 빙고게임 등이 시작되자 금세 눈을 반짝였다.

둘째 날부터는 하루씩 테마를 정해 봉사활동을 펼쳤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둘이 합쳐 하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효실천교육 '제가 도와드릴께요', 일산해수욕장에서 펼쳐진 '우리동네 수호대' 등 3가지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또는 오후 내내 시간을 비워야 했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겨울보충수업이 없는 한 주를 봉사활동에 쏟은 청소년도 있었다.

화암고등학교 2학년 손수한군은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니고 그냥 하고 싶어서 참가했어요"라고 나누리학교 참가 동기를 설명했다.

손군은 보충수업이 없는 황금같은 1주일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과 노는 것을 선택했다.

울산 참사랑의 집에서 지적장애인들이 한지공예하는 것을 돕고 산책도 했다. 이날 청소년들은 평소 낯설고 무섭게 까지 느꼈던 장애인들과 금방 친구가 됐다.

손군은 "나와 짝을 맺은 장애인이 동생처럼 보여서 무작정 반말을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30대 아저씨였다. 경솔하게 반말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뒤 "다음번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노인회관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설겆이와 청소를 했다. 손주처럼 반찬을 챙겨주고 춥다며 뜨끈한 바닥에 손을 비벼주며 정을 나눠주는 노인들에게 아이들은 감동했다. 또 찬 바람이 불어 유난히 추웠던 날, 아이들은 일산해수욕장에서 쓰레기를 주웠다.

이처럼 나누리학교에 참가한 14명의 청소년들은 3일동안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요즘은 일회적인 봉사활동을 지양해 봉사활동 기관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단기간에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대상에 대한 봉사활동의 경험은 장기적인 봉사자로 성장하는 데 귀중한 다리 역할을 한다.

나누리학교를 진행한 이성미 팀장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도 짜임새 있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극을 받으면 곧 장기적인 봉사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4일간의 교육과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을 발표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봉사활동을 하기 전 준비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이 것이 너무 많아 막상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 아쉽다."

"노인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할 일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세부 프로그램이 좀 더 철저하게 짜여졌으면 좋겠다. 남을 돕기 위한 시간인데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을 발표하는 마지막 시간, 청소년들은 첫 날과는 달리 사뭇 진지했다.

이 팀장은 "평소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오면 문서 정리나 청소 같은 단순한 업무밖에 시키지 못했다"며 "더욱 체계적인 교육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아이들도 진정한 봉사활동의 묘미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나누리학교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지만 청소년들은 다르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과 제대로 된 프로그램'만 제공하면 더 잘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 바로 청소년이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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