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들어와서 "문화"와 "문화재"라는 말이 같이 사용되지만 그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문화는 원래 나고 자라면서 습득하는, 우리와 우리후손들에게 무언(無言)으로 이어주는 행위이고 그 부산물이 문화재인 것이다. 이들이 쇠퇴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왔다.

 울산의 처용문화재는 문화의 도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경제와 문화, 교육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로 시민이 같이 느낀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문화활동"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화활동이 시행될 때마다 역사박물관도 없는 도시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기획되는 것이 "울산 문화재 기획전"이다. 기획전을 보고 있노라면, 문화재가 시민들에게 감성적인 인상을 줌과 동시에 보고 난 뒤에는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찝찔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재가 삶의 일차적인 목적이나 의미에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재보호법이 강화되면서, 문화재가 "보고 즐기던 감성 문화재"에서, "체감 문화재"로 다가오자, 문화재 보존이 시민들의 엄숙한 숙제가 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그 흔적이 물질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하며 크게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사적 등으로 나눈다. 또 땅속에 묻혀 있는 매장문화재와 지상 건조물인 지상문화재로 나누기도 한다. 좁게는 문화재를 가시적인 효과가 극대화된 유물(遺物)인 인공물(artifact)로 한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긴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이 착용한 금관, 금전으로는 계산이 어려운 도자기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재는 대지와 유적(遺蹟)이라는 필연적인 형식에 포장된 채, 산고의 아픔을 견디어 낸 후 생긴 귀중한 문화유산이라서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울산에는 그러한 시기와 유형을 달리하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것이 최근 개발이란 빠른 형상변경의 붐을 타고, 문화재보존과 개발이라는 문제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공장설립을 위하여 모든 공정과 예산을 투자한 시민이 공장 부지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문화재가 나오면 큰 시련을 겪는 수가 있다. 시민이 공기연장에 발굴비까지 각출해야 하니 속상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현실과 이상이라는 큰 숙제를 풀어야 한다. 공장을 바로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미래의 우리자손들을 생각하는 문화재 보존도 한번은 되짚어야 할 현실이자 이상인 것이다.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고 호흡이자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하는 지를 보여주는 산교과서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갈 곳이고, 그들 나름대로 사회를 지탱해 줄 역사의 동아줄을 찾아야 할 곳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의 현실이 척박하고 어렵다고 해서, 후손과의 공유자산인 문화재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가지는 공통된 견해이기 때문에, 자기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는 교훈이 있다.

 울산은 산업도시, 환경이 나쁜 도시라는 오명이 덕지덕지 묻은 곳이다. 이곳을 사람이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문화와 문화재가 숨쉬는 도시로 바꾸고 싶다면, 문화재 보존이라는 현실의 아픔은 시민과 행정당국이 모두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문화재가 우리와 후손들의 공유자산이자 가까운 시일날 건립될 울산역사박물관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어려움으로 울산 문화재가 외면되고 훼손된다면, 울산은 훗날 문화가 없는 그야말로 오명만 남은 도시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재 보존은 울산민의 엄숙한 숙제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