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리(香山里)는 향산과 능산 두 행정마을로 되어 있다. "향산"은 마을 뒤의 작약봉에서 풍기는 향기가 높다는 뜻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향산리의 세이골에는 세이지(洗耳池)라는 못이 있다. 중국의 요(堯)임금과 허유(許由)·소부(巢父)의 고사에 나오는 소재를 못 이름으로 하였다.

 중국의 패택(沛澤)이라는 곳에 허유라는 고결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애당초 앉지 않았고, 까닭 없는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으며, 오로지 의(義)를 지키며 살았다. 허유에 관한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요 임금이 그를 찾아가 천하를 물려줄 터이니 받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허유는 이를 거절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훌륭하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임금을 두고 어찌 나 같은 자가 대신 옥좌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 같은 작은 그릇이 어찌 넓은 천하를 맡겠습니까?"하고는 기산(箕山) 밑을 흐르는 영수(潁水) 근처로 가버렸다.

 요 임금이 다시 그를 따라가서 "그렇다면 구주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였다. 허유는 이를 다시 거절하였다. 그리고는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무척 더러워졌을 것이다"하면서 자기의 귀를 영수의 흐르는 물에 씻었다.

 이때 작은 망아지 한 마리를 앞세우고 어슬렁거리며 오던 소부가 허유에게 묻기를, "왜 갑자기 강물에 귀를 씻는 거요?"하였다. 허유가 대답하기를 "요 임금이 와서 내게 천하나 구주를 맡아달라고 하기에 내 귀가 더럽혀졌을까 하여 씻는 거요"하였다. 이 말은 들은 소부가 목청껏 크게 웃어댔다.

 허유가 민망하여 소부에게 웃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소부는 "은자(隱者)랍시고 세상에 소문을 퍼뜨려 요 임금이 찾아오게 하여 그런 낭패를 당한 것이요"하였다. 그리고는 망아지를 몰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물을 먹이며 말하기를 "그대의 귀 씻은 구정물을 내 어찌 망아지에게 먹일 수 있겠소. 그래서 위로 올라온 것이요"하였다. 뒤에 허유가 죽자 요 임금은 그를 기산 위에 묻고 무덤을 기산공신(箕山公神)이라 하였다.

 〈언양읍지〉에 따르면 향산 쪽에 세이지가, 지내리에 소부당이 있다 했다.

 벤치마킹(Benchmarking)이란 기업경영에서 경쟁업체 또는 선진기업을 연구하여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옛 향산 사람들은 중국의 선비정신을 따르고자 마을 못의 이름을 중국 고사를 벤치마킹하여 후세에 허유나 소부 같은 향기로운 인물이 나기를 기대하였다.

 서울 강남의 특정지역의 부동산가격 폭등이 자녀교육에 대한 일부 학부모들의 과욕도 그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그들에게 세이지 견학코스를 알려주고 싶다. 이곳에 와서 귀를 씻고 허욕을 버리기를 권한다. 향산리 세이지 못이야말로 우리 학부모들의 좋은 벤치마크 견학장소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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