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文盲)'의 개념은 사회발전에 따라 변한다. 과거의 문맹은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의 문맹은 컴퓨터 등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물질문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자주 접하게 되는 '금융문맹(金融文盲)' 역시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문맹이다. 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컴맹'이 생겨난 것처럼 일상생활에 차지하는 금융의 비중이 커지고 새로운 금융수단이 출현하면서 돈의 소중함과 그 관리방식을 모르는 '금융문맹'이라는 새로운 문맹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맹은 개인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심대한 장애요인이 된다. 대표적인 금융소비생활의 이기라 할 수 있는 신용카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신용불량자 문제가 바로 그러하다. 또한 금융문맹의 심각성은 그것이 결코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경제문제를 뛰어넘어 우리 가정을 와해시키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과거 외환·금융위기의 뼈아픈 경험과 금융 선진국의 선례를 바탕으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10년간 '금융문맹 퇴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우리나라가 금융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민들의 금융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이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청소년, 성인 등 전방위로 금융문맹의 퇴치를 위해 노력했다. 금융감독원 부산지원이 관할하는 울산지역만 하더라도 2006년 이후 14개 초중고와 4개 사회단체를 찾아가 현장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직원들을 상대로 현장 금융민원과 금융애로사항을 상담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과 금융교육 단체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국민들의 금융에 대한 이해도는 금융 선진국에 비해 낮다.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력(FQ)은 100점 만점에 50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어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금융문맹자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금융문맹의 퇴치 즉, 청소년의 금융이해와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을 위해 이제 부모가 나서야 할 때다. 물론 학교도 금융문맹 퇴치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반드시 참여하여야 하지만, 상당기간 학교교육은 입시교육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청소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상생활에서 금융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을 지도할 수 있는 역할은 부모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부모는 생활 속에서 금융교육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일상생활을 떠나서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금융교육은 더욱 그렇다. 특히 자녀에게는 금융지식과 개념의 이해보다는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의 습관화를 위한 금융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녀들이 배운 내용을 생활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할 때에만 금융교육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녀의 생활 주변에서 돈 문제를 가르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이를 가르치는 게 보다 실질적인 금융교육이 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금융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2000년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금융지식 측면에서 고소득층 자녀들과 저소득층 자녀들이 차이가 있는지 조사해 보았다. 조사결과 고소득층 자녀들이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많은 금융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부모들이 물려 준 '재산'이 아니라 '금융지식'의 차이가 자녀들을 '부자'로 혹은 '가난한 삶'으로 살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금융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스 스스로도 공부해야 한다. 즉, 21세기에 직면한 신종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부모가 적극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정창모 금융감독원 부산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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