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Carr는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를 통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고 하였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현재를 알 수 없고 미래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는 단지 정물(靜物)적으로 정지되어 버린 객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역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를 연구하여 아는 것은 우리의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로라고 보아야 한다.

 재판은 추상적인 법규를 구체적 사건에서 해석, 적용하는 절차이다. 당사자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가려내고, 이렇게 인정된 사실에다 법령을 적용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 재판이다. 얼른 생각하면 사실의 인정과 법령의 적용과정은 매우 기계적인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법에는 눈물이 없다는 말도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사실의 인정과정이나 법령의 해석, 적용과정은 철학이나 가치관이 배제된 기계적 절차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이다. 우리가 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여건이 모두 배경이 된 상태에서 비로소 어떤 사실이 인정되고 법령의 해석과 적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법관에게는 다양한 경험과 올바른 가치관, 역사관이 요구되는 것이다.

 요즘은 가치관이 별로 중요시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육체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우리의 관심이 있을 뿐이며, 어떻게 하면 보람 있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아스라한 피안에 꼭꼭 숨겨두고 살아가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말이 금과옥조인 양 우리가 지나친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역사를 배워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 것에 그치면 우물 안 개구리 차원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세계 역사를 주도하여 왔던 국가들은 어떤 기초가 있었기에 그리 할 수 있었는지 배워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가 세계 역사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꿈을 아예 가지지도 말아야 한다. 도대체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는지, 왜 멸망했는지조차 모르고, 로마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잘 모르는 대학생이 다수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세계역사를 모르고도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이것은 미신이다. 시민혁명이 무엇이며 그 역사적 배경이 어떠했는지를 모르고 인권이니, 자유민주주의니 하고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공산주의가 언제 어떻게 태동되었다가 왜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서는 자본주의니 복지국가니 하는 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요즘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무채를 고르게 빨리 써는 정도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고 한다. 전인교육이라는 관점에서 그런 교육을 시키는 것인지는 몰라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채를 잘 써는 능력보다도 오히려 인류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그 잘잘못을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깨닫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진정한 전인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무채 써는 능력, 김밥을 잘 싸는 능력을 가르치는 시간을 할애하여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법관이 역사관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기만 한다면 그 사회의 개혁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 나라를 세계의 지도적 국가로 올려놓기를 우리가 바란다면, 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역사학습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현재 얼굴모습을 볼 수 있어야만 얼굴에 묻어 있는 티를 발견할 줄 알아 이를 떼어내고 올바른 용모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수학문제를 더 많이 풀도록 가르치고 외국어를 더 잘 구사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같은 기계적 능력의 배양 교육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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