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이 책들은 삼국시대 정황은 담고 있으나, 그 이전 선사시대 내용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유구한 역사 가운데 선사시대 문헌기록은 거의 백지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백지상태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매장문화재이다. 문화재보호법에 규정된 이 매장문화재가 최근 각종 건설공사에서 허상과 실상 문제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문자 그대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의 제44조에 매장문화재를 정의하면서 매장문화재는 발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손들의 역사탐구와 실생활의 불편을 생각해서 부분적인 발굴조사는 허용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덧붙임이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역사탐구보다는 실생활의 불편을 들어서 건설공사에 의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더 많이 활용되어 왔다. 이런 사정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매장문화재를 보호하기 보다는 개발을 전제로 한 발굴조사에 더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에는 매장이 예상된 주요 유적은 개발 전에 바로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개발될 때마다 문화재보호법에서 덧붙인 조항으로 발굴조사하고 그 유적을 개발측에 내어 준 것이 이제는 합법적인 개발법처럼 되고 있어서 안타깝다. 여기에 문화재보호법의 허상과 실상이 있는 것이다.

 울산만해도 1960년대 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배고픔 해결이란 국가적 대의명분 앞에 주요 유적이 있을 만한 곳에 문화재조사 한번 없이 공장이 들어섰다. 그 당시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적 대의명분 앞에선 사문법(死文法)이자 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 문화유산 보호가 강조되면서 문화재보호법은 개발을 전제로 한 발굴조사에서 주요유적들이 나오면 개발현장을 보존하거나 원상복구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시설물을 우회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개발론자들이 매장문화재의 보존과 개발을 두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문화재보호법의 발굴비 규정도 최근 문화재보호법의 개정에 따라 시민생활과 직결된 소규모 발굴조사비만 당해 정부 예산범위에서 지원할 뿐, 그 외에는 공사시행자가 발굴비를 부담토록 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공자산에 대한 기본 정책의 원칙을 원형보존에 두지만 매장문화재처럼 불가피한 개발로 파괴되거나 보존 및 활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기록보존을 위한 비용을 원인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일로 개발자들은 발굴비부담, 공기지연 등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발자들이 공사현장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개발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에서 발굴에 따른 발굴비부담 등 제고통을 감수하면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 향후 이에 대한 행정당국자들의 문화재보호법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노력이 없다면 문화재보호법 제82조에 규정한 문화재훼손에 대한 엄한 벌칙은 세월이 갈수록 개발자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악법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매장문화재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밝혀주는 주요 자산이란 점,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어 받는 귀중한 상속물이란 점, 또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공유자산이란 점 등은 개발론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인식하는 공통분모이다.

 이 공통분모를 우리의 뿌리이자 훗날 주요한 관광자원이 될 매장문화재 보호에, 문화재보호법 차원이 아닌 모든 시민과 지방자치단체, 정부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애정을 보인다면 문화재보호법의 허상과 실상은 틀림없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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