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어느 만두 가게에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난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만두를 빚으며 주인 내외가 속삭였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눈만 뜨면 안방 장롱처럼 볼 수 있는 게 영감이고 할멈인데 뭐가 저렇게 애틋할 게 있겠어?" "혹시 첫 사랑이 아닐까요? 열렬히 사랑했지만 주위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오늘따라 할머니는 건강이 더 안 좋아 보였고 눈물을 자꾸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두 노인은 만두 두 개를 남겨두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축하며 나가버렸다.

주인 내외는 다음번에 오면 어떤 관계인가를 물어 볼 참이었으나 그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두 달이 넘은 어느 수요일 3시에 할아버지가 가게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머니는 곧 오시겠지요?" "못와, 할멈은 하늘나라에 갔어…"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너무 기가 막히고 안타까웠다.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서울 목동 작은 아들 집에 살았다고 한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한 분씩을 모시게 되자 두 노인은 견우와 직녀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두 가게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애환을 달랜다는 것이다. 가슴이 저러오는 이 노부부의 이야기가 어찌 이들만의 이야기겠는가.

2004년 말의 일이다.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나를 돌봐주지 않으려면 부양비라도 달라는 것이다. 법원은 삼형제가 합쳐서 월 20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몇 년 전 서울에서 60억원의 재산을 가진 할머니가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다. 재산 때문에 자식들 등살에 살아남을 수 없어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내가 정신이 있을 때 널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구나. 내가 살아 있을 때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구나." 서울 한 복지원 벽에 붙어있는 시 아닌 시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한 할머니가 써 붙인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미국 금융회사에 근무하던 40대 초반인 김씨 부부는 노부모 봉양 문제로 의견이 갈려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업무차 일시 귀국했던 김씨는 노모가 중풍으로 간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귀국해서 부모를 모시자고 아내를 설득했지만 자녀 교육을 위해 영주권을 갖겠다고 완강히 고집하는 바람에 혼자만 귀국했다. 김씨는 그 해 겨울 별세한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부인이 오지 않자 이혼 소송을 냈던 것이다.

어느 시인은 요즘 세상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서 불안하고 무너져서는 안 될 것이 무너져서 불안 한 것'이라고 했다. 효가 무너지면 사회의 모든 질서까지 흔들린다. 그래서 어버이 살아실 때 섬기길 다하라는 옛 가르침도 있지 않는가.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가 귀찮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풍자적인 이야기엔 유산이 많으면서 일찍 죽는 부모가 일등 부모이고 유산이 많으면서 오래 사는 부모가 이등 부모이고 유산도 없으면서 오래 사는 부모가 낙제 부모라는 것이다.

낙랑국이 멸망하게 된 것은 고구려 군대가 쳐 들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울려야 할 자명고가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울어야 할 효의 자명고(自鳴鼓)가 찢어져 있다. 이 세상에 아들과 며느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순간 내 가슴에 있는 효의 자명고를 한 번쯤 점검해보자. 행여 찢어져 있지나 않는지….

윤정문 전 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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