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 우리가 몹시 어려웠던 시절,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 국민가요로 인식될 만큼 이 노래에는 찢어지게도 가난했던 당시의 생활 속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 담겨 있었기에 더욱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잘 살아보세"라는 그 시대의 구호는 절대적 선이 되었고 우리가 쏟아낸 땀과 노력의 대가는 그런 "그림 같은 집"이려니 하고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가난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판잣집을 탈출해 "양옥집"이라는 서구화된 주거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옛날 우리가 자연과 어우르며 살았던 삶의 깊이는 사라지고 우리의 도시 풍경이 바뀌어 갔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아파트"라는 콘크리트박스는 우리의 산과 들에서 중요한 풍경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거형태의 변화는 마을이름까지 바꾸고 있다. "00맨션"이니 "00빌라" 같은 본래의 뜻과 상관없는 이름들이 무차별로 붙여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 분양하고 있는 아파트 등은 나 온통 "건설회사 이름+외래어"로 이름지어져 있다. 외국인을 위한 집도 아닐 텐데 왜 하나같이 그런 말도 안되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길거리에 있는 간판으로부터 과거의 "마을"과 비교되는 아파트 이름까지 우리주변에는 우리의 것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소위 "브랜드" 시대의 현상 때문이라지만 국적이 불분명한 외래어로 아파트이름을 지어야 고상해보이고 분양이 잘 될 거라는 사업자의 얄팍한 상술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느 아파트의 경우에는 입주민들이 기존의 아파트 이름 대신에 브랜드가 붙은 새아파트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유인즉 새아파트라는 이미지를 높이고 고급스런 분위기까지 더해 자산가치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화, 세계화를 표방하는 요즈음 시대에 그게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도대체 아파트이름을 외국어로 바꾸지 않으면 집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삼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삼성물건이 안 팔리고 소니라는 이름 때문에 소니물건이 세계에서 안 팔리는가? 아무런 객관적 증거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필요한 외래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받아들여야한다.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공동체를 위한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외국어를 섞어 써야 유식해보이고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혹시 사대주의의 극단은 아닌지 또는 기지촌 근성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대구의 어느 아파트연합회가 주관이 되어 입주민들이 직접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이름을 짓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분양만 끝나면 그 아파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건설회사의 상호를 빼고 입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아파트이름을 짓는다는 취지로 "아파트이름 주인 찾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최근에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수도권의 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이름을 "샛별마을", "양지마을" 등 좋은 우리말로 지어져 입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우리 울산에서도 "으뜸마을"이라든가 굴화두레마을이라는 이름의 아파트가 있다. 쉽게 생각해도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우러나는 멋진 이름이다.

 아파트 이름은 사람의 출생신고와도 같이 등기부등본과 주소로 등록되면 법적으로 변경이 어려운 만큼 입주단계에서 입주민들이 스스로 짓도록 행정당국의 제도적인 뒷받침도 따라야할 것이다. 도산한 업체의 상호로 이름을 지은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들이 이미지의 실추로 인해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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