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주간보호센터·요양원서 '약손'으로 활동
5년간 변변한 단체명 없이도 묵묵히 봉사 손길
나눔 통해 자원봉사자의 고마움 새삼 깨닫기도

매월 둘째 넷째 금요일이면 남구 달동 울산시시각장애인복지관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안마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봉사활동을 벌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최동석 울산시시각장애인복지관 상담의료팀장은 "늘 비장애인에게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지역사회에 위해 뭔가 베풀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9월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해 어느덧 5년째에 접어들었는데 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없다.

이에 대해 최 팀장은 "많을 때는 10명 넘게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대개 5~6명이 갈 때가 많다"며 "지금은 복지관 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사람이 더 모이면 그 때 동아리 형식으로 발대식을 가져도 봉사활동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변변한 이름 하나 없지만 그래도 이들은 원년 멤버 6명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봉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원년 멤버 중 홍일점인 박정순(53)씨는 "목소리만 들으면 어떤 증상 갖고 있던 할머니인 줄 다 안다"며 "한 번 가면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봉사활동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노인들을 위한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을 위주로 활동한다. 각 기관에서 실시하는 물리치료 등 프로그램에 정기적인 안마까지 더해지면 노인들이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매번 다른 기관을 찾아 봉사하던 것을 2005년부터 일년 단위로 바꿨다. 안마 효과를 높이고 지속적인 봉사를 위해서 였다. 박씨는 "예전에는 헤어질 때 가지말라고 잡으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1년을 한 곳에 가다보니 어르신들이 아프다고 하는 곳을 제대로 만져드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봉사활동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비장애인처럼 눈은 뜨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한 할머니가 어디가 아프냐는 박씨의 물음에 몸짓으로 대답해 한동안 침묵이 흐른 적도 있다.

박씨는 "앞이 안 보여서 어르신들 얼굴은 기억 못 하지만 노래 잘 불렀던 할머니, 등이 많이 안 좋았던 할머니로 만났던 어르신들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5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다녀 그동안 이들에게 안마를 받은 노인들만 1000여명이 넘는다. 안마를 직업으로 삼기도 하는 이들이지만 한 번 봉사활동을 나가 2시간 동안 4~5명의 노인을 안마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다.

안마의 특성상 아플 때도 있지만 어떤 노인들은 손만 갖다 댔는데 '아야 아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봉사자들이 평소보다 적을 때면 중간 중간 쉬지 못해 힘이 빠질 때도 있다.

그래도 안마가 끝나면 약손이라며 시각장애인들의 팔을 만져주는 노인들과 혹시나 안마하는 데 불편할까봐 바닥에 미리 이불을 펴 주며 배려해 주는 기관 직원들이 있어 힘을 낸다.

박씨는 "처음 봉사활동을 한다 했을 때 '봉사'가 무슨 '봉사'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한 번씩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어르신들에게 안마를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복지관은 이들의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매번 봉사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봉사할 기관과 연락을 담당하는 것도 모두 복지관의 몫이다. 때문에 복지관의 도움없이는 그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거라고 시각장애인 안마봉사자들은 입을 모았다.

최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며 "쉽지 않은 일인 줄은 알지만 안마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100여명의 울산지역 시각장애인들 중 더 많은 이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각종 행사가 진행될 때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내가 봉사활동을 해 보고서야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빠지지 않고 어르신들 만나러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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