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북면 이천리와 경남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 경계에 있는 재약산은 높이 1,189m로 영남알프스 중 남 알프스를 형성하는 산이다. 이 곳에는 백자요지(白磁窯址)를 비롯하여 금강폭포, 층층폭포, 사자폭포, 비호폭포 등이 있고, 그 밖에도 절경이 많다. 재악산(載嶽山), 재암산(載岩山)이라고도 하며 밀양 쪽의 산자락에는 호국의 성지인 표충사가 있다.

 재약산은 천황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이에 대하여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그들의 천황을 떠받들기 위해 억지로 붙인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전국의 여러 곳에 산재한 천왕봉이라는 이름과 같이 제정일치시대의 천왕(天王), 천왕랑(天王郞), 천군(天君)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신라초기 언양 일대에 있었던 거지화도 그 신읍(神邑)의 우두머리였던 제주(祭主)를 천왕 또는 천왕랑이라 하였다. 그 신을 받드는 제단은 흔히 산꼭대기에 있으므로 천왕당·상왕당·선왕당이라 하고, 이것이 변하여 서낭당이 된 것으로 본다.

 재약산이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이름모를 병에 걸려 백약이 효험이 없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하고 약수를 마시며 병을 치료하다가 이 산에 오게 되었다. 그 때 왕자의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일러준 약수를 찾아가 마셨더니 병이 씻은 듯이 고쳐졌다. 이 말을 들은 흥덕왕은 이 산을 "약수를 갖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재약산(載藥山)이라 이름을 내리고, 그 샘을 신령스런 우물이라 하여 영정(靈井)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는 지금의 표충사 자리에 대대적으로 불사를 일으켜 영정사(靈井寺)를 지어 이 산과 신령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실제로 재약산에는 100여종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어 "약재의 보고"로 불려지고 있다. 이 산의 약수로 왕자의 고질병을 고쳤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세월이 흘러 영정사는 다시 1839년에 표충사(表忠寺)로 부르게 되었고, 그곳에는 승장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에 수많은 왜군의 목을 베었던 청룡언월도를 비롯하여 방패·활 등 유물 200여 종을 보관하고 있다. 국난을 전후하여 땀을 흘린다는 유명한 표충비각(表忠碑閣)이 있다.

 약초뿌리를 가득 품은 재약산 자락의 비각인지라 약의 효험인지 나라가 위경에 처하면 경고나팔로, 평화가 찾아 온 뒤에는 안도의 의미로 나라사랑(忠)을 "진땀"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나긴 세월, 영험의 땅에서 온갖 은택을 입고 사는 우리가 국가적인 대사를 앞두고 피와 땀으로 애써 필사보국하지 못하고 사분오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표충(表忠)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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