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좋은 게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이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 말에 쉽게 찬동할 수 없다. 대충 두루뭉실 사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고, 원칙을 중요시하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그런 뜻으로 해석된다면, "좋은 게 좋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착한 사람, 덕망이 높은 사람을 가리켜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법은 착한 것, 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과 모순되거나 적어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 은연중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법은 원칙을 선언하여 놓은 것이다. 즉,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는 기준과 원칙을 정해 놓은 것이 바로 법이다. 그러기에 법은 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덕스럽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법이 좋은 것이라고 느끼기보다는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여왔다.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법은 거추장스런 것이라고 여기거나, 법이란 것이 없으면 더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이러한 인식이 법체계의 발전역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절대군주체제에서 생기는 인권침해와 재산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다.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산을 빼앗아 가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법이 만들어 졌고, 이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19세기 후반 무렵까지 서구사회에서는 인권분야와 경제분야에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법체계가 대체로 완성되었으며, 그후에는 과도한 자유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보장분야를 강화하는 법체계로 발전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식민시대에 일본법이 그대로 이식되었는데, 그 이식과정에서 인권을 보장하고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사항이 철저히 배제되었다. 일제시대를 살던 우리민족은 아마도 법을 개인의 인권보호, 재산권보장의 수단으로 느끼지 않고, 일제의 억압수단 또는 수탈수단으로 느꼈을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법은 일제시대의 것을 대부분 수용하였고, 그러다 보니 첫출발에서부터 법이 국민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통치자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법을 정당하지 못하게 적용하였기에 법은 나쁜 것, 불편한 것, 없어도 되는 것, 심지어 없으면 더 좋은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는 별달리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법을 거저 얻었다. 공짜로 얻은 물건은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듯이, 대가 없이 거저 얻은 법이기에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법치주의란 국가를 법에 의해 통치한다는 개념인데, 적지 않은 국민들은 "나라를 그렇게 통치하면 너무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에 입각하여 통치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적당히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통치하는 것이 좋다고 사고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권력집중, 독재로 흐르게 되어있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얻은 경험에 의하면, 독재를 방지하고 자유·평등·복지를 구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치주의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원칙없이 예외가 횡행하는 사회는 예측가능성이 없어 매우 불안하고 무질서해 질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원칙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법대로 하자"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이 말은 원칙대로 하자는 뜻인데, 굳이 나쁘게 여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우리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탈피하여야 하며, 원칙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인식하도록 사고의 전환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법은 편리하고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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