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울산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강제로 시켰다.

그 사건은 자율학습 마치기 20분쯤 전에 일어났다. 자율학습 중에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갔던 학생 한 명이 자율학습 마칠 때쯤 학교로 급히 들어오다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학생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들이 놀라 모두 학교 밖으로 뛰어 나갔다. 다행히 학생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없었던 교실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자율학습 마칠 때가 가까워서 더욱 그랬겠지만 감독 선생님이 없는 교실은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감독 선생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몰래 조기 귀가(?)도 감행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자율학습 마치기 10분 전쯤에 갑자기 교장선생님께서 교실을 둘러본 것이다. 1반부터 10반까지 전 반을 둘러보시면서 교장선생님은 그 시간까지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1반 30명, 2반 31명, 3반 32명, 4반 39명……10반 27명.

학급 정원이 45명 안팎이었던 시절이었므로 남아 있는 인원수만 가지고 보면 4반 학생들이 그 시간까지 가장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있는 평소 그 시간의 학생수는 이와는 달랐다. 1반 44명, 2반 44명, 3반 45명, 4반 40명……10반 45명.

4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반이 자율학습 마칠 때까지 다 남아 있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있었던 그 날은 대부분의 반이 4반보다 남아 있는 학생수가 훨씬 적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감독 교사가 있든 없든 일정한 숫자가 남아 있는 반과, 감독 교사가 있을 때는 많았다가 없으면 썰물처럼 사라지는 반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난 그 4반 담임 선생님을 잘 안다. 내 바로 옆반 담임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자율로 가르쳤고 인격적으로 대했다. 개인 사정으로 자율학습에 빠지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을 때는 일일이 면담하고는 학생들을 믿고 집으로 보내줬다.

학생들도 담임 선생님을 신뢰하며 일정한 인원수 외는 자율학습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반은 성적도 다른 반에 비해 좋았다.

그 반은 자율학습 감독 교사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남은 인원수에 차이를 보였던 다른 반과는 달랐다. 몽둥이를 들고 강제로 자율학습을 시켰던 여느 반과는 확실히 달랐던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4월15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앞으로는 우열반도 자율, 0교시 수업도 자율,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도 자율, 등·하교 시간도 자율로 정한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 교육 관련 규제가 있어도 무시하고 0교시 등교와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이런 자율이 무엇을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울산의 경우 한 술 더 떠 이젠 중학교까지 방과후 학교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강제적인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 초등학교 어린이에게까지 강제적인 진단평가를 보게 해 그 성적을 공개하는 등 반교육적인 정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자율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경쟁 만능의 학교교육을 더 이상 부채질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자율은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교육 행정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존중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울산광역시교육청은 명심할 일이다.

이종대 학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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