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참으로 오묘하고도 다양해 같은 의미의 말이라도 표현에 따라 그 격을 달리한다. 눈과 눈깔이 그러하고 치아와 이빨이 그러하며 같은 입이라도 주둥이라거나 아가리라고 하면 영 격이 떨어진다. 그것은 눈이나 입의 품격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주인의 품격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음악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품행에 따라 음악가나 예술가로 불리우는가 하면 딴따라라고 비하해서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 공부를 해 약간이나마 기능이 생기면 그것을 드러내 뽑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것이 강한 욕심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자제하기가 어려운데 이것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 각종 경연의 난립이다. 뽑내기에는 상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따라서 이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뒷거래까지 이뤄지게 되고 여기에서 시기와 질투 등 갈등이 생겨 삶의 질과 사회 정의를 저하시키게 된다.

모든 공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어야지 상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율곡 선생은 '요즈음 학문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과거에만 목적을 둬 부모가 가르치고 형의 권하는 바가 오로지 과거뿐이어서 학문의 본질을 흐린다'고 한탄한 바 있다. 학문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예술이랴.

산을 오르는 사람은 등산 그 자체가 중요하고 즐거운 것이지 꼭 정상을 밟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오르다 보면 정상이고 그것이 기쁨인 것이지 헬리콥터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하여 같은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 연마하는 과정에 보람을 둬 계속 힘쓰다 보면 실력향상과 함께 기쁨이 수반하게 돼 삶의 질이 향상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데 공헌하게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듯이 상이 난무함은 난세의 길임에도 각종 경연, 경기로 욕심을 자극해 건전해야 할 영혼을 멍들게 하면서 이것을 발전으로 착각함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잘못된 욕망을 예로 돌려 겸손하고 사양하며 남을 존중하던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갈 때 안정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천군만마는 이길 수 있어도 자기 하나는 이기기 어렵다 하였으니 부단한 수행과 연마로 참다운 길을 행해 사회에 이바지하고 자기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꾸어야 할텐데 참다운 예인을 찾아 보기 어렵고 딴따라라는 행렬을 이루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창조 울산시우회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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