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일등도시 울산 6월테마 - 봉사로 이어가는 나라 사랑

나라 위해 몸 바쳐 싸웠던 이들…

고령의 국가유공자·보훈가족에 따뜻한 손길
가사·간병부터 목욕·이발·병원동행까지 척척
마음 닫고 '문전박대' 친해지기까진 어려움도

호국보훈의 달이다.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자 기둥이다. 그리고 현재 유족들과 유공자들이 그 열정을 이어받고 있다. 그들은 유공자들을 돕고 사회에 대한 봉사로 앞서 간 호국영령들의 뜻을 기린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짝을 지어 고령인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을 위해 경제적 생활이나 가사, 나들이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들을 소개한다.

"평생 우리 보훈가족 돕는 일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울산보훈지청(지청장 이수진)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훈도우미로 활동중인 박남숙(50)씨의 다짐은 확고했다.

지난 2001년 공상군경인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동으로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울산시지부 회원이 됐다. 박씨는 그 중에서 젊은 편에 속한다.

그는 "국가유공자나 그 유족이라고 하면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며 "실제 주변에 있는 보훈가족들을 보면 좁은 방안에서 병마나 외로움과 힘겹게 싸우는 분들이 많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울산보훈지청은 지난 2006년 4월부터 보훈도우미 사업을 시작했다. 보훈도우미는 기본적으로 가사나 간병 지원 업무를 담당하지만 멀티플레이어 자질이 필요하다. 서비스 대상자인 보훈가족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울산보훈지청 김미옥 사회복지사는 "이동에서 부터 목욕, 식사, 염색, 나들이, 병원 동행까지 생활 전반에 걸쳐 보훈도우미 손길이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울산에는 모두 7명의 보훈도우미가 활동 중이다. 그 중 4명은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갖췄다. 보훈도우미가 담당하는 보훈가족 수는 62명에 달한다. 사업이 시작된 지 3년만에 서비스 대상자가 약 3배로 늘었다.

박씨를 포함한 보훈도우미는 모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보훈가족의 집이나 병원을 방문한다. 보훈도우미 한 사람당 평균 8명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일정은 늘 빼곡하다. 보훈가족 곁에 단 몇 분이라도 더 있어주고 싶은 마음에 보훈도우미들은 모두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박씨는 남구 신정동 한 국가유공자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다. 술통이 많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 박씨는 "할아버지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라며 걱정과 원망이 담긴 소리를 내뱉는다. 할아버지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싶어해 할머니 몰래 박씨가 콜라와 소주를 섞어 제조한 것이다. 분명히 천천히 드시겠다 했는데 사흘만에 반이 없어진 것이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깎아달라고 하자 박씨는 능숙하게 미용도구를 꺼내든다.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 혈압과 혈당도 잰다.

사실 처음부터 박씨가 할아버지와 잘 지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문을 잡고 일부러 안 열어주는 어르신도 있었다. 대부분 그런 식이라 문전박대를 많이 당했다"고 말했다. 박씨와 마찬가지로 보훈도우미들은 모두 노인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박씨는 어르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각각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먼저 그는 같은 보훈가족임을 강조했다. 문전박대하던 노인들도 같은 보훈가족임을 밝히면 호감을 갖는다. 그런 다음 술을 좋아하면 오디주 같은 몸에 좋은 술을 담아 선물하고 못 치는 화투도 친다.

박씨는 "어르신들에게 보훈도우미들은 더이상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기다려주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됐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씨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보훈가족을 위해 좀 더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사회복지 공부를 한 것"이라며 "공부와 보훈도우미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밤낮으로 힘들었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보훈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보훈도우미는 매달 식비와 교통비를 지급받지만 누구도 생계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보훈도우미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울산보훈지청 김미옥 사회복지사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받는 것도 미안해하며 일부를 다시 보훈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기증하는 도우미도 있다"고 말했다.

보훈도우미이자 미망인인 박씨는 "국가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물질적 보상이 다가 아니다. 과거의 아픔을 겪진 못했지만 그 상처를 품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보훈가족을 위한 봉사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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