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비료사업 민영화로 동부그룹에 인수
89년 5개월 파업등 민영화 홍역 앓기도
노사관계 안정 최근 2~3년 흑자경영 지속
사업다각화 성공 '식량안보 파수꾼'

울산시 남구 매암동에 위치한 동부하이텍 울산비료공장(공장장 김광철 상무)은 과거 영남화학(주)이란 사명으로 잘 알려진 국내 비료사업의 효시격인 사업장이다.

국영기업으로 출발해 동부그룹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던 울산비료공장은 최근 수년간 성공적인 사업다각화와 경영합리화 과정을 거쳐 식량자원이 무기화되고 있는 21세기 국가기간사업장으로써의 역할과 아울러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 생산력을 갖춘 비료 사업장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식량 자급자족이란 국가적 명제 속에 탄생

동부하이텍의 전신인 영남화학은 1965년 정부에서 차관을 빌어 미국 회사와 합작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사업의 핵심사업인 '식량 자급자족'이란 국가기간사업 수행을 위해 설립됐다. 1967년 국내 최초의 복합비료공장을 완공, 농가에 복합비료를 공급함으로써 자급자족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영남화학은 독일의 바스프 등 세계적인 메이저 기업 상당수가 비료사업에서 시작해 세계적 중화학공업으로 성장한 것과 달리 한미 합작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20년 동안 비료 한 품목만 생산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1982년 영남화학에서 비료의 원료인 인광석에서 생산된 금속우라늄 일부가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없이 처리됐다고 해 지난 2004년 한국의 핵실험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었다.

악전고투하던 영남화학은 1987년 정부의 비료산업 민영화 조치로 동부그룹에 인수되면서 성장기에 접어들게 된다. 삼성, 효성 등과 3파전으로 전개된 영남화학 인수전은 다른 기업보다 무려 170여억원이나 높게 응찰가격을 써낸 동부에 낙찰되면서 당시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1986년 국내 최초의 SM 생산공장인 울산석유화학공업(주)을 인수했던 동부는 영남화학마저 인수, 1996년 (주)한농과 합병하면서 국내 굴지의 농업전문회사인 동부한농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민영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국영기업체의 방만한 경영에 물들어있던 임직원들은 민영화에 따른 경영합리화 등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자 1989년 5개월간의 파업이라는 노사간 극한 대치 속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이후에도 2차례의 파업과 노사간 반목은 계속됐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식량안보 파수꾼으로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다각화와 경영합리화 작업은 계속됐다. 암모니아공장과 요소공장을 철거했고 신규사업으로 탱크터미널사업, 질산공장, 정제인산공장, 유기질비료공장, 상토공장 등을 건설하면서 튼실한 경영체체를 구축하게 됐다.

영남화학이라는 원브랜드의 자부심과 동부의 경영이념이 성공적으로 합쳐지면서 복합농업전문회사로 성장하는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난해 동부반도체와 합병해 동부하이텍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울산비료공장은 수년간의 공정개선 등 사업합리화가 결실을 맺고 노사관계가 안정되면서 최근 2~3년 흑자경영을 지속하는 등 제2의 발전기를 맞고 있다. IMF체제에도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어려움을 극복한 노사는 상호간 신뢰를 구축하며 2004년 이후 올해까지 5년 연속 무교섭타결을 이어오고 있다.

이같은 노사화합 아래 회사는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원료가격 인상폭을 뛰어넘는 생산성 향상, 비료 업계의 궁극적 목표인 '작물에 맞는 비료 공급'이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식량 자급자족'의 밑거름이 됐던 것처럼 전 세계적인 식량의 무기화에 대비해 식량안보에 일익을 담당하는 국가기간사업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게 울산비료공장의 의지다.

글=신형욱기자 사진=임규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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