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청동기 아우르는 다양한 시대 묘사
세계 유수 학술지·언론 등 통해 국제 공인
육식동물 그림 중앙아시아와 비슷해 이채

지난 1월 인문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프랑스 잡지 는 '사회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특집호에는 생물학, 선사학, 민족학으로 나눠 각 주제별로 저명한 연구자들의 논문을 실었다.

이 책에는 '한국 또 다른 신석기 문화'라는 논문도 당당히 수록됐다.

서양에는 한국의 유적이나 선사시대 문화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심하게는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의 신석기 문화에 대한 논문이 세계적인 학술지에 수록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바위그림은 조형 예술 가운데 하나로, 석기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그리고 고대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어졌다. 따라서 각 문화기 별로 새롭게 등장하였거나 생김새가 바뀐 도구 등 문화요소들이 그 속에 형상화돼 있다.

이런 이유로 수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바위그림이 제작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걸맞는 새 양식이 창출돼 온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 육지동물 45점을 비롯해 물고기, 사냥장면, 사람 등 총 75종 200여점의 바위그림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특히 인류가 신석기시대에도 이미 고래잡이를 했다는 기록을 남긴 세계 유일의 선사기록화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높다.

이 반구대 암각화는 2002년 9월 프랑스 고고학지 <아케올로지아>에 소개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또 2004년 인류학 잡지인 <랑트로폴로지>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프랑스의 르피가로지, 영국 BBC, 미국 워싱턴 포스트 등 전세계 언론에 보도돼 사실상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프랑스 르피가로지 어린이 신문은 "한국 사람들은 신석기대 때 고래사냥을 했대!"라는 제목으로, 영국 BBC 인터넷판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기원전 6000년부터 고래 사냥을 시작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를 연구해 세계에 알린 성림문화재연구원 이상목 박사(선사학)는 "유럽의 수많은 암각화와 고래잡이 증거 자료는 청동기 시대를 넘어서지 않는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시대까지 올라가는 인류의 문화유산 그 자체"라며 "다만 국내는 물론 세계 학자들의 관심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치돼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구대암각화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시베리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관돼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줄·얼룩무늬의 육식동물과 사슴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그림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아주 많이 발견됐다. 이는 곧 한국과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암각화는 그러나 수와 규모면에서 중국, 러시아, 몽골 등 주변 국가들에 비해 영세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반구대암각화는 신석기시대 동북아시아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박사는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는 유럽과 근동지역의 신석기 문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며 "반구대암각화는 신석기 시대의 수렵문화에서부터 청동기 시대의 정착 농경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글=전상헌기자honey@·사진=김동수기자dskim@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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