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진대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고 유사 이래로 큰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어 지진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이 때문에 건축물의 설계시에도 지진을 소홀히 다루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가운데 최근 중국 쓰촨성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초강도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1978년 허베이성 탕산에서 24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지진 이후 최대 규모다.

이에 앞서 지난 1995년에는 일본 오사카의 갑작스런 지진으로 수천명의 인명과 재산이 사라졌다. 우리는 이 지진들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웃나라의 강진이 '강건너 불구경'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04년 5월 울진 앞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다행스럽게도 이 지진은 한반도 동쪽 해상에서 발생해 내륙에서는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지진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100년만에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고, 이후에도 2.0~3.5 정도의 여진이 2~3일 동안 측정됐다. 이는 한반도가 안전지대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건축물 내진설계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88년이다. 이후 20년이 흘렀으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그 자체가 섬인데다 지진대 위에 위치해 있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장의 세이칸 해저터널, 세계 최장의 아카시대교를 건설하는 등 내진설계에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 울산은 지진구역Ⅰ에 해당되며, 지난 2005년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을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00㎡ 이상으로 강화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바로 화재다. 화학공단이 밀집한 울산에는 각종 인화성 물질이 공장 안에 산재해 있어 대형 폭발위험까지 안고 있다. 기계실이나 주방, 작업실 등 연료나 전기선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화재나 폭발, 그리고 감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물탱크와 기름탱크는 건물 전체를 물바다, 기름바다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에는 교통마비가 발생해 소방차마저 진입할 수 없는 '설상가상'의 형국이 되기도 한다.

지진을 외적의 침입이라고 가정한다면 거기에 대항하는 제1, 제2 방어선이 많을수록 좋다. 다시 말하면 출입문이나 창문이 탈락했을 때 그 해당층의 피해에 그치게 하는 1차 방어선이 발코니와 파라펫, 난간, 차양 등인데, 이것들이 충분한 힘을 갖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됐다면 피해는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지난해 일본 어느 도시의 공동주택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발코니 끝 부분에 창문을 달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는데, 알고보니 지진시 유리문 파괴로 인한 1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지상에 노출된 기름탱크는 새는 경우가 생겨도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방화벽과 저유피트가 설치돼 있었으며, 건물 옥상의 계단탑 등은 조적조 대신 철근콘크리트 내력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몇가지 참고사항을 질문해본 결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건물의 경량화'였다. 건축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가능한 비중이 적고 허용내력이 큰 것이 좋다는 뜻이다. 강도가 크더라도 잘 깨지는 재료보다 변형흡수 능력이 큰 것일수록 유리하다 할 것이다. 지진은 지각이 순식간에 엇갈리면서 빠른 속도로 흔들리는 운동이므로 건축물이 이에 순응할 수 있는 굽힘변형을 일으키지 못하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토지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밀도 초고층 건물이 많아지고 있는만큼 구조물의 내진성능을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수행돼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적·경제적 요구에 따라 널리 채택되고 있는 공동주택의 벽식구조시스템이나 주상복합건물의 골조+벽식구조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내진설계를 위해 심도 있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재현 수영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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