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장애인복지회에서 실시하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목욕행사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오전 10시 동천체육관으로 달려갔다. 장애인을 태우고 갈 승합차가 보이지 않아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장애인을 태운 차 3대가 왔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간단한 인원(남자 30명, 여자 28명)점검을 하고 차에 올라 목적지로 출발했다.

승합차가 무룡터널 속을 지나니 정자해변이 보였다. 멀리 수평선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안고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속에서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지만 흥겨운 동요가 즐거움을 더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장애인들의 얼굴은 함박웃음꽃이 피었고,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인 양남해수온천랜드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조심스레 한 명 한 명 장애인들 손을 잡고 휠체어에 태워 1층 카운터에서 옷장열쇠를 받았다. 나에게 몸을 의지하는 장애인을 도와서 2층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봉사자와 장애우들은 1대 1로 손을 잡고 목욕하기로 했다.

중증장애인 김성철(40)씨는 오늘 나와 함께 목욕할 사람이다. 난생 처음 시도해 보는 목욕봉사이다. 2층 탈의실에서 김씨의 옷을 벗기는데 몹시 힘이 들었다. 그렇게 휠체어에 탄 김씨와 함께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며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할아버지, 손자입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웃으며 휠체어에서 김씨의 육중한 몸을 내려 겨우 옮겼다. 가볍게 몸을 비누로 씻어내고서 탕 속으로 들어갔다.

김씨와 나는 한 몸이 되어 서로 안고서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푸른 바다와 어촌의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 늙은 나를 의지하는 김씨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따뜻한 정감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김씨는 처음엔 물이 뜨거워 얼굴을 찡그리더니 곧 웃음 띤 얼굴을 하고서 나에게 몸을 맡겼다. 나는 열심히 그의 몸에 비누칠을 하고 또 했다. 머리도 감기고 발까지 깨끗이 씻어 수건을 깔고 한 쪽에 눕혀 놓고 또 한 명의 장애인의 등을 밀어 주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장애인의 얼굴 표정에 따라 기분을 맞춰주며 목욕봉사를 마치니 시계가 벌써 12시 반을 가리켰다. 이제 장애우의 옷을 챙겨줘야 할 때다. 김씨를 휠체어에 태워 목욕탕을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얼굴엔 화장품도 발라주니 처음 어색해하던 김씨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휠체어를 몰고 1층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김씨와 눈빛으로 서로 고마움을 몇 번이고 나누었다. 식사 후 온천랜드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도 찍고 각자 타고 온 승합차에 몸을 싣고 다시 울산으로 향했다.

동행한 승합차 기사를 통해 김씨가 스무살 때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동천체육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반, 모두들 아쉬워하며 장애인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곳을 향해 서로 의지하며 다정하게 손잡고 휠체어를 밀며 당기며 목욕탕에서 한 몸이 된 오늘. 나의 작은 수고는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 또 이 기쁨이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목욕봉사는 평소 목욕하기 힘든 장애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생활의 큰 활력소가 됐다. 또 장애인의 웃음 띤 얼굴과 나를 가족처럼 대하며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던 모습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아픈 장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과 함께한 일이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누구든지 어느 순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황혼에 나의 건강을 지키며 남을 도와 목욕을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성격이 밝은 김씨와 울산복지선교회에서 만나 말벗도 해주며 자주 만나기로 약속했다. 탕 안에서 함께 한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기쁨의 큰 물결을 이루듯 목욕봉사의 진정한 감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흐뭇한 하루였다.

김진경 베스트울산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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