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축가가 가난한 서민들에게 집을 고쳐주거나 새로 지어주는 MBC TV의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여러가지 평가가 있었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모습과 함께 감동과 따뜻함의 미학이 느껴지는 프로로 기억된다. 그리고 각종 TV의 인기드라마에서도 건축가는 일상화된 모습으로 편하고 쉽게 다가가는 대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사회의 모든 전문직능이 이처럼 일상과 함께 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직능 가운데 건축이야말로 사회와 쉽게 호흡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직능이 아닌가 여겨진다.

 주변에서는 건축을 한다고 할때 일반적으로 "참 좋은 일을 한다”는, 약간의 선망을 담은 말을 듣게 된다. 건축을 매력 있는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반면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가로 사는 일에 대해 힘들어하며 고통을 호소한다. 건축 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도 두루 정통해야하고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는 것도 건축가로서의 어려움이지만 현실적으로 일에 쏟아 붓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금전적 대가를 포함한 반대급부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점, 그리고 건축이 아닌 주변의 잡다한 업무에 너무나 많은 정력과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힘이 든다. 그렇다고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건축의 성취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한국이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더 이상 건설 산업은 경제를 주도하지 못하고 그 비중도 점점 줄게 되었다. 현재의 인구증가추세나 주택 보급율도 그렇고 저성장형태로 진입한 경제구조로 보아 개발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건축 호경기는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점점 건축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건축가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무조건 나빠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서 하이퍼 자본주의의 새로운 주역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화가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가치창출을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자면 건축이 하나의 문화이자 문화관련산업으로서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말이다. 이런 여건변화에 대해 건축계는 예민하게 대응하면서 현실체제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처럼 빠른 변화를 얼른 알아차리고 신속히 대응해야 개인도, 가정도, 건축도 살아남는 세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지만 한편으로 건축가처럼 보람 있고 재미있으며 가치 있는 직업도 흔치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대의 수많은 직업과 노동의 형태에서 건축가처럼 보람 있고 재미있으며, 자아실현과 창조의 희열, 사회 기여가 두루 가능한 직업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건축도 영원할 것이다. 한 시대의 문명을 만들어간다는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사는 건축가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에게 솔직해야하며 건축의 도덕성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사회학자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모든 방법을 생각하듯이 건축가는 공간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행복을 전해준다.

 어느 건축가는 자식이 건축가가 되겠다고 장래희망을 밝힌 말을 듣고 난 후 자식을 훌륭한 건축가로 키우기 위한 교육방법으로 "내가 죽도록 열심히 건축하는 것"이라 했다. 바로 이 한마디가 지금의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건축 지망생들을 위해 우리 건축가들이 가져야할 비장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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