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위 벗어난 의제 제시등 정치색채 강한 산별체계 파행
생산·수출 차질 탓 美시장 소형모델 인기 호재가 악재로
'현대차=노조파업' 깨뜨릴 선진 노사문화 정립 서둘러야

노동계의 파업은 한때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이 고착되면서 점차 고립돼 가는 추세이다.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파업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시켜 비정규직 문제 등 정작 필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활동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파업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파업이라면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각인(Imprinting)효과로 지난 20년간 현대차 파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남은 탓에 파업의 목적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사상생의 새로운 노동운동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파업도 이같은 노사관계 속에서 더 큰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현대차=노조파업'이라는 등식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진입하는 데 항상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동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치파업에 휘청대는 자동차산업

지난달 23일 현대차지부는 '현대차만 나서는 투쟁은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 2일 민주노총의 정치파업과 연계한 금속노조 파업은 현대·기아차지부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적어도 완성차 4사는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도 GM대우와 쌍용차가 불참하면서 무너졌다.

산별노조 차원에서 동참한 이른바 민주노총 정치파업 참가자는 90%가 금속노조 소속이었으며, 현대·기아차 조합원 비율은 73.6%에 달했다. 현대차는 이번 파업으로 차량 2000여대를 생산하지 못해 300억원 상당의 차질을 입었다. 현대차지부는 10일에도 주·야간조가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을 결의, 추가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올 초부터 이미 예상됐다. 교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섭방법과 의제조차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산별 중앙교섭은 시작부터 파행이 예견됐다. 현대차 노사는 어렵게 지난 1일 지부교섭 실무협상에 들어갔으나 이마저도 중앙교섭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가 커 전망은 불투명하다.

현대차는 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내세운 미 쇠고기 재협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은 개별기업 협상장이 아닌 국회 등 정치권에서나 논의돼야 할 의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요구안인 해외투자시 노조 동의, 중소기업 40시간 노동제 전면 실시 등은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반면 현대차지부는 중앙교섭이 마무리 돼야 지부교섭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색채가 강한 국내 산별체계에 대한 변화가 없는 이상 노사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 산별노조 차원의 파업도 피할 수 없어 정치파업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산별노조에 대한 사측의 전향적인 자세도 필요하지만 이중교섭과 다중파업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대안을 노동계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정주연(고려대) 교수는 "한국 현실에 맞게 토착화됐던 기업별 교섭을 산별교섭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략 수립과 집행이 장기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정치이슈는 노사정위원회에서, 기업이슈는 기업별 단체협상에서 논의하는 선진화된 협상문화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미국의 경기침체와 고유가 현상이 현대차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전망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동급 대비 가격이 저렴한 현대차 소형모델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입어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미국시장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6.6%를 기록했다. 특히 미국 판매량의 55%가 수출물량으로 내수부진에 빠진 현대차에게는 호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현대차지부가 부분파업에 이어 협상 타결까지 휴일 특근을 거부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하고 있다. 현대차는 "베르나, i30, 아반떼 등의 주문폭주로 3~4개월치 일감이 밀려있지만 특근 거부 등으로 생산과 수출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의 이같은 방침은 지난 3월 생산물량 부족으로 '잔업과 특근을 보장하라'며 잔업을 거부했던 1공장의 사례를 감안할 때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지난 민주노총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현대차지부 역사상 처음으로 '사실상 부결'의 결과가 나오는 등 파업 위주의 강경한 노동운동과 산별노조에 대한 현장정서의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노사협력으로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지난 3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개최한 '글로벌 시대 자동차산업정책과제' 포럼에서 박준식(한림대) 교수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의 낙후된 노사관계가 세계 경쟁력을 잠식하는 최대 장애요인"으로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국내 자동차산업이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회사와 근로자가 새로운 상생의 타협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노사는 근시안적인 물량확대와 이익추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준모(성균관대) 교수는 "현대차 노사의 협상 과정에서 빚어지는 노사 갈등으로 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정례적인 임·단협 외에도 물량조정과 인력전환배치 등으로 연중 소모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차 노사의 현실이 세계 경쟁력 구축의 한계점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노사협력을 통해 울산지역 경제난 극복에 앞장 서 달라는 지역사회의 열의도 뜨겁다. 울산상공회의소와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 등은 성명서를 내고 "대화와 타협으로 올해 임금협상을 잘 마무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소비자들도 "파업비용이 구매자들에게 전가돼서는 안된다"며 현대차를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가 어떤 방식으로 노정갈등과 교착상태인 중앙교섭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노사관계의 지평을 열어나갈 지에 대한 안팎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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