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울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 지는 울산사람이면 누구나 잘 안다. 시쳇말로 업종을 가릴 것 없이 현대차의 부침은 수많은 울산시민들의 '밥줄'과 직결된다. 한 예로, 울산의 주요 상권인 삼산을 비롯해 명촌과 호계가 신흥상권으로 자리잡은 이유도 현대자동차 직원이 밀집해 살거나,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에 부품공급을 하는 1·2·3차 협력업체들에게는 현대차야 말로 절대적이다. '고객은 황제'라는 말이 있지만, 협력업체야 말로 현대차가 곧 황제나 다름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황제란 군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들이 생산하는 상품(부품)을 현대차가 구매(납품)하지 않거나 구매량이 줄어들면 곧바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내가 근무하는 곳 역시 현대차 하나만 바라보고 불철주야 공장을 돌린다. 때문에 현대차의 동향은 우리의 최대 관심사다. 마치 농어민이 하늘을 바라보며 농사와 어로작업을 나가듯이, 우리 역시 현대차의 오더(주문)는 하늘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현대차가 조금 시끄러운 것 같아 걱정이다. 이달 초에 미국 쇠고기 문제로 파업을 한데 이어 10일에도 공장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이 바람에 많은 중소업체들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중소기업은 현대차와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부분이 많다. 근무환경을 비롯해 급여나 복지시설,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엄청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근로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는 비록 양에 차지는 않아도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직률이 높아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다. 사무직 근로자를 뽑을 땐 대학졸업자들이 줄을 설 정도다. 그만큼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전에 100만명이 넘는 가장이 직장이 없어 가사일을 한다는 보도는 이 시대의 취업난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근로자의 최대 무기는 '파업'이다. 그러나 파업은 '자기 희생'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성을 띄고 있다. 때문에 잘못 쓰다간 되레 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정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파업이다. 경영자가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신규투자라면, 노조지도부의 최대 고민사항은 파업이 아닐까 싶다.

사실 웬만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파업은 엄두도 못 낸다. 물론 근로조건에 만족해서가 아니다. 노조가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차 같은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면 꼼짝없이 일손을 놓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게 실감난다. 솔직히 말해 현대차가 산별노조냐 개별기업노조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파업여부에 대해서는 정말 민감하다. 그래서 중소기업 경영진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노조의 행보에 온 촉각을 세운다. 안 할 말로 대기업이야 파업을 해도 회사나 근로자가 당장 큰 일을 겪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납품량이 춤을 추면 경영자는 피가 마른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설비를 도입했는데 본의 아니게 공장을 못 돌리니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빠듯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근로자 역시 이만저만한 타격이 아니다. 교활한 토끼는 만일을 대비해 세 개의 구멍을 뚫는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도 못하다. 오직 모기업 하나만 바라고 올인을 한다.

차제에 대기업 노조지도부는 파업이라는 카드를 꺼낼 땐 중소기업 근로자의 입장도 깊이 고려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잔뿌리가 건강해야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중소 협력업체에게 '파업'공포 대신 '주문량 폭주'라는 단비를 내려주면 더욱 튼튼한 거목으로 성장하는데 일조를 할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오기를 고대한다.

추성훈 울산시 북구 매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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