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고 따뜻하다. 꽃피고 새 지저귀는 뒷동산과 실개천, 노랗게 익어가던 문전옥답(門前沃畓). 생각만해도 도시생활에서 부대끼며 삭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위안과 평화를 주는 것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고향은 우리 주변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그곳은 콘크리트로 메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도시화라는 미명하에 우리 고향을 위시한 산천초목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촌향도라는 사회현상이 팽배했다. 즉 고향을 떠나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근본 터전 자체가 도시화로 소멸되고 원주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나의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나고 소에게 풀을 먹여가며 성장한 북구 화봉동도 토지공사에서 시행하는 구획정리지구로 지정돼 사라지게 됐다. 보상금이 평당 45만원 내외로 책정돼 거주민 대부분이 수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고향의 터전이 없어진다는 안타까움과 설상가상으로 현실적으로 그 보상금액으로는 울산지역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웰빙(well-being)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지금은 그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는 말이 됐다. 현대는 도시화 못지 않게 그 반대급부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본능 또한 강하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본다.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거주지를 선택할 때 예전에는 직장과의 교통여건이라든지 자녀들의 학군이 최고의 판단기준이었다면 요즘은 거기에다 주변환경 즉, 공원이나 풍부한 녹지가 추가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도시화 속에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어우러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나라 정책을 보면 아직도 70~80년대 개발지상주의가 판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시절이라면 춥고 배고픈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이런 식이라면 농촌이 모두 사라져 식량자원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외국에서 식량 전부를 수입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소농이 대부분인 형태이고 외국에서는 대량생산을 통한 대농들이 싼 값에 수출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농토도 도시화로 개발돼 농촌이 사라지는 판국에 우리의 농업은 쇠퇴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먼 미래를 내다볼 필요도 없이 요즘 식당을 가보면 그런 조짐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쌀보다 해외 수입쌀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외식업체에 국내산 쌀만을 사용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린 것을 본 적도 있다.

계속적으로 문전옥답이 사라지고 자연환경이 훼손되면 그 생태학적 피해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개발이 필요하다면 전답이 아니라 전국토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산지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의 고향과 산천을 더 이상 도시화라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훼손한다면 우리의 농업은 쇠퇴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도 보장 받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동팔 (주)울산송정종합조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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