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연말에 알고 지내는 목사님 한 분이 당신이 데리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강연을 하나 해달라고 하셨다. 주제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장애인들에게 힘과 격려가 되는 어떤 이야기를 부탁하신 것이다. 평소에 장애인들이 인터넷 사용법이나, 더 나아가 정보기술을 습득한다면 그 사람들의 삶이 혁명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오던 나로서는 참 잘되었다 싶은 마음에 응하였다.

 교회의 강연실로 들어가니 장애우가 강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칠판을 뒤로하고서 사람들을 보니 참 놀라웠다.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170여명이나 되는 다양한 장애우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이는 누워있고, 어떤 이는 서있고, 어떤 이는 앉아있었다. 또 어떤 이는 팔이 없고, 어떤 이는 하반신이 없었다. 어떤 이에게는 도저히 나의 말이 소화가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불행하게 어떤 소년은 너무나 뚜렷하고 영리하게 보였으나 하반신이 없었다.

 이래저래 강의를 10년 정도 해온 필자도 적이 긴장되었지만 강의를 하였다. 놀라운 것은 너무나도 성실하게 강의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몸이 불편한 그들이라, 일반인들이 취하기 매우 힘든 자세와 동작이었으나 나에게 질문도 하고, 나의 질문에 응답도 하는 등 강의가 진행되었다. 필자도, 그들도 강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90여분의 시간을 보내었다.

 강의를 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정보화의 유익성을 가르치고 있지만, 삶에 있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그들에게 오히려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준 목사님께 참 고마운 마음이 든 것을 물론이다. 다른 곳 같으면 강의가 끝나면 강의료를 생각하게 되겠지만, 나오면서 목사님께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추운 연말에 난방비라도 좀 생각해 올 것을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나의 인생관에 반하는 일이었다. 지식이 상품인 지식시대에 지식을 주고 난 뒤 또 다른 것을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다니, 세상에나! 강의를 가기 전 목사님이 강연료는 없다고 미리 말해주었기에 강의료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더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하여 면목을 세우지 못하고 나오다니.

 그날 강의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남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은 참 좋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고 핀잔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모르겠다. 그런데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은 참 중요하다는 것을 훨씬 더 절감했다. 그것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더불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같게 함으로써 삶에 희망을 부여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자신의 삶을 더 맑게 하고, 더 향기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굳이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외국 연구자료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사심 없는 마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보면, 나도 이 사회의 괜찮은 구성원이라는 느낌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삭막한 세상. 하나라도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서,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굴려서 궁핍해진 우리들의 영혼이 아닌가? 1년 365일 모든 시간에 세상을 다 가지고 싶어서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연말에 한 삼일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이타적인 마음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더 나아가 한 달에 하루 혹은 나흘정도 주기적으로 이타적일 수 있다면, 29일 혹은 26일을 이기적으로 좀 산들 용서가 될 것 같다.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서 남을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마다 다 나름대로 가진 것이 없을 수 없다. 사람에 따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잘 만드는 사람, 힘이 좋은 사람, 돈이 있는 사람,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 청소를 잘 하는 사람, 글을 잘 읽고 쓰는 사람 등 제각기 장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말추위에 한잔 술로 송년회포를 푸는 것도 좋지만, 전혀 모르는 이와 베품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관음(觀音)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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