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는 현존하는 독일 사상가 중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주도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계승해 비판이론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칸트, 셸링,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전통철학의 흐름과 베버, 미드, 파슨스로 이어지는 전통사회학의 흐름을 영미 언어철학과 통합해 상호주관적 차원에서의 의사소통이론을 새롭게 수립했다.

독일 태생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 현존 철학자

실증주의부터 역사주의 이르는 인식 유형 비판 고찰

비판이론의 부분적 수용 '의사소통능력이론' 개발

'공론의 영역' 통한 의견의 대립과 차이 극복을 주장

신실용주의를 주장했던 미국 철학자 로티(1931~2007)는 하버마스야말로 독일과 미국의 지성인들, 그리고 두 나라의 좌파인사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버마스는 형이상학의 전통과 상대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중간적 위치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1929년 6월 18일, 독일 뒤셀도르프 굼머스바흐에서 세 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하버마스 박사는 그 지역 상공회의소 소장이었다. 하버마스는 1949년부터 1954년까지 괴팅겐, 취리히, 본 대학교에서 철학, 역사학, 심리학, 독일문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1950~51년 겨울학기 강의를 듣기 위해 하버마스가 취리히에서 독일 본으로 왔을 때 학과장실을 차지하고 있었던 한 동료 학생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하버마스의 사상 형성에 방향타 역할을 했으며, 하버마스를 가장 잘 아는 철학자였다.

하이데거의 실존적 존재론에 심취했던 아펠은 로타커 교수의 세미나를 좌지우지하고 있었고, 처음 만난 하버마스에게 하이데거의 신간 '형이상학 입문'을 선물했다. 그들의 우정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두 사람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에서 전통적 사유, 즉 모더니즘의 정당성을 붙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 왔다.

1954년에 하버마스는 로타커와 베커 교수의 지도하에 '절대자와 역사'라는 논문으로 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논문에서 그는 셸링의 사유가 분열되는 현상을 다루면서 절대자, 곧 신조차도 역사 속에서 위축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헤겔,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하버마스가 나중에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은 역사성 앞에서는 절대자도 변형된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하버마스는 충분히 위험한 사상가였다.

1956년에 하버마스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이끌었던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의 조교로 발탁됐으며, 이 시기에 동료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을 사회학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학생과 정치'라는 책으로 펴냈다.

1959년에 그는 독일연구재단(DFG)으로부터 학술지원금을 받아 교수자격논문에 착수했다. 1961년에 하버마스는 아벤트로트 교수를 통해 마르부르크대학교에 '공론영역의 구조변동'이라는 논문을 제출했으며,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학생운동의 시금석이 됐다. 하버마스는 마르부르크대학교의 사강사로 취임했으나, 교수자격 취득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조교수로 초빙됐다(1961~64).

1963년에 '이론과 실천'이 출간됐다. 이 책은 '인식과 관심'(1968)과 함께 하버마스의 초기저작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5, 60대층에도 매우 친숙한 책이다. '이론과 실천'은 헤겔과 셸링에 관한 논문들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는데, 하버마스는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이론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해방을 한 계급만의 이해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유물론 철학을 신화로 변질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같은 해에 하버마스는 이른바 '독일사회학의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 편에 가담하게 된다. 본래 이 논쟁은 1961년에 아도르노와 포퍼 사이에 일어났으나, 그들의 제자인 하버마스와 알베르트 사이의 논쟁으로 비약했다. 하버마스는 자연과학적 방법론 또는 과학주의만으로 사회현상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룰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그 논쟁결과는 1969년에 책으로 출판됐다.

1964년에 하버마스는 호르크하이머의 후임으로 프랑크푸르트대학교의 철학 및 사회학 교수로 초빙된다(1964~71). 하버마스는 1967년에서 68년까지 학생운동권과 논쟁을 벌였다. 당시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빠져있었던 상황에서 하버마스의 학생운동비판은 충격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오랫동안 지탄의 대상이 됐다.

1968년에 출판된 '인식과 관심'에서 하버마스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를 거쳐서 실증주의, 실용주의, 역사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인식 유형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딜타이와 가다머의 해석학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그는 인식을 주도하는 '관심'의 기능을 강조했으며, 자신의 책에 대한 아펠의 영향력을 숨기지 않고 있다.

1971년에 하버마스는 체계이론을 정립한 니클라스 루만과 논쟁을 벌였으며, 이 논쟁에서 하버마스는 자신의 비판적 사회이론에 루만의 체계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했으나, 루만은 자신의 입장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피상적으로는 루만이 우위에 선 것 같지만 하버마스는 이 논쟁을 통해 의사소통능력이론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발했던 것이다.

하버마스는 1971년부터 1981년까지 바이체커와 함께 막스 프랑크 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1975년부터 82년까지 그는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철학 명예교수로 지냈으며, 1980년에 다시 막스 프랑크 연구소장직을 맡았다.

1981년에 그의 주저 '의사소통행위이론' 1, 2권이 출간됐으며, 1984년에 한 권이 더 출간됐다. 10년 전부터 기획된 이 책들에서 그는 의사소통적 능력을 가진 다수 주체들의 논의에 바탕을 둔 진리합의설을 옹호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지한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의견 대립과 차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론의 영역', '공론장'의 개방이 요구된다.

공론장은 이상적인 대화상황이 가능하게 주어지는 지평이며 조건이다. 시민들이 권력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공론의 영역이다. 이를 통해서 의사소통이 비로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능력이론에서 중시하는 논의 규칙들은 이해성, 진리성, 정확성, 진실성이다. 이해성은 다른 사람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어법적으로 바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진리성이란 허위나 조작이 아닌 참된 사실만으로 진술하는 것을 뜻한다. 정확성은 관찰이나 규범에 입각해 사실을 온전하게 구성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진실성은 대화자가 일상적인 삶에서 신뢰할만한 인물인가를 살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정상적인 대화상황에서 논의를 할 경우에만 정상적인 합의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하버마스와 아펠이 제시한 담론윤리학을 통한 진리합의설은 현대 사회이론의 인식론적 근간이 됐다.

1983년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대학교의 철학교수로 다시 취임했으며,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간명하게 정리한 '도덕의식과 의사소통행위'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피아제의 인지발달론과 콜버그의 도덕발달론이라는 평행적인 두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의윤리학적 단초를 마련한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를 거쳐 하이데거와 가다머에 이르는 인식론이나 해석학의 문제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정적으로는 아펠과의 대화에서 촉발된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가 이 책을 아펠에게 헌정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1985년에 현대의 주요사상가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저서 '근대성의 철학적 담론'을 펴냈다. 신보수주의자들이 분화된 사회현상을 안개로 비유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불투명성'이라는 시사평론집 역시 이 시기에 출판된다. 또한 그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복원하려는 디터 헨리히에 반대해 이른바 형이상학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논쟁은 나중에 '탈형이상학적 사유'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1986년에 하버마스는 나치제국을 옹호하고 아우슈비츠 사건을 은폐하려는 일단의 역사학자들과 '역사가 논쟁'을 벌였으며, 그 성과는 이듬해에 '일종의 손해청산'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하버마스는 1996년 서울에 초청돼 다산강좌 및 서남강좌에서 강연한 바 있다. 국내의 하버마스 연구는 사회철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주요 저서들로는 '사회과학의 논리' '후기자본주의 정당성 연구' '이론과 실천'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새로운 불투명성' '인식과 관심' '현대성의 새로운 지평' '담론윤리의 해명' '도덕의식과 소통적 행위' '이질성의 포용: 정치이론연구' '탈형이상학적 사유'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의사소통행위이론' '사실성과 타당성: 담론적 법이론과 민주적 법치국가 이론' 등이 있다.

하버마스 개론서로는 발터 레제-쉐퍼의 '하버마스'(1998)가 가장 좋으며, 톰 록크모어의 '하버마스 다시읽기'(1995)는 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레이몬드 게스의 '비판이론의 이념'(2006)은 하버마스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릭 로데릭(1992)과 스미스(1991)의 책은 하버마스의 사회철학을 다루고 있다. 로버트 영(2003)의 책은 하버마스사상의 교육학적 적용에 관한 내용이다. 존 시톤(2007)은 하버마스와 현대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내학자들의 연구서로는 이진우 외, '하버마스의 비판적 사회이론'(1996), 김재현 외, '하버마스의 사상: 주요 주제와 쟁점들'(1996), 한상진 외,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1997) 등이 있으며, 그 밖의 단독저서로는 윤평중의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1997), 선우현의 '사회비판과 정치적 실천'(1999), 홍기수의 '하버마스와 현대철학'(1999) 정도가 참고할 만하다. 하버마스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이 수에 있어서는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추천할만한 수작이 나오지 않은 것은 한국학자들이 하버마스를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 진 (울산대 교수·제22차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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