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국가철학 대변 현시대 가장 큰 영향력
기본적 평등권 강조…기회균등 조건하에 불평등 인정
불평등 초래하는 지위·권력, 공정한 경쟁으로 통제해야
1971년 펴낸 '정의론'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바이블로

노존 롤즈(John Rawls 1921~2002)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철학을 대변하는 사상가이자 우리 시대의 정치철학, 법철학, 경제사상 등의 영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제시한 '정의론'의 철학은 정치, 경제, 법, 교육, 사회이론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정의론'이 나온 3년 뒤에 하버드대학교의 철학교수 노직(Robert Nozick)이 펴낸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는 롤즈와는 반대적인 관점을 가진 책이다.

직이 최소국가론을 통해 현대의 거대 자유주의 국가를 위협했다면 롤즈는 그것을 정당화하고 옹호했다. 노직이 잊혀져가는 반면에 롤즈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롤즈의 사상은 마이클 왈쩌, 찰스 테일러, 마이클 샌들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민주주의 사회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우리는 '개인의 존엄성' '자유' '다수결' '합의' '공리성'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곧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가?" "개인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제한될 수 있는가?" "다수결의 원리는 항상 존중되어야 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존 롤즈의 '정의론'은 우리를 바로 이런 물음들로 인도하고 있다.

롤즈는 1921년 2월21일, 미국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서 윌리엄 리와 안나 아벨 사이의 5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린빌의 은행가였으며, 그의 부모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롤즈의 아버지는 매릴랜드 주지사를 지냈던 앨버트 리치의 친구였으며, 상원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유받기도 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는 루즈벨트와 뉴딜정책을 후원했다. 롤즈의 어머니는 여성유권자 지역 연맹 총재를 지냈으며, 다른 정치조직에서도 활동했다. 롤즈는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평생 동안 여성의 평등권에 대한 관심을 흩뜨리지 않았다.

롤즈의 집안은 본래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28년에 디프테리아를 앓다가 다시 폐렴으로 전개되는 등 중병에 시달린 적이 있었는데, 1927년에 태어난 그의 막내 동생 토미는 결국 1929년에 죽고 말았다. 롤즈는 그보다 여섯 살 많은 형을 따라잡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의 형 스토우브(빌)는 키가 크고 힘이 세서 축구, 권투, 테니스 등에 능했으며, 롤즈는 그의 자취를 따라서 엄격한 종교학교로 이름난 서부 코네티컷의 켄트 스쿨에 다녔다. 롤즈는 형이 다녔던 프린스턴대학교(1939~42)에 입학해 화학, 수학, 예술사를 선택했으나 결국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롤즈의 철학 스승은 스테이스와 노만 맬컴이었다. 롤즈는 '도덕의 개념'(1937)으로 유명한 스테이스에게서 밀의 공리주의와 칸트의 도덕철학을 배웠으며, 이 때 받은 교육은 그의 사상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칸트와 밀은 보편적인 규범을 전제하고 있는 도덕철학자들이었다. 칸트는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개인의 양심과 도덕법에 두었으며, 밀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의 원칙에 두었다. 롤즈는 이 두 도덕사상가들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롤즈에게 가장 중요한 선생이 됐던 맬컴은 당시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공부한 후 1939년에 하버드로 돌아왔다. 1941년 가을에 롤즈는 맬컴에게 철학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신랄한 비판뿐 이었다. 이 일로 롤즈는 철학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1942년에 롤즈는 맬컴의 세미나에서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악한가라는 거의 신학적인 질문을 제기했는데, 감각자료 등 인식이론에 치중한 맬컴에게 이러한 물음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롤즈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니부어 등에 대한 텍스트를 읽으면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어떻게 악이 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 즉 '신정론' 혹은 '변신론'의 문제에 몰두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을 넓혀 나갔다. 악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결국 정의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롤즈는 태평양사령부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이 때 그는 뉴기니아, 필리핀, 그리고 몇 개월 동안은 일본에서 점령군으로 활동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 그는 다시 프린스턴으로 돌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46~50). 학위 직전에 그는 장학금을 받아서 경제학과 정치사상을 공부했다. 특히 메이슨(Alpheus T. Mason)이 편찬한 미국의 헌법과 정치사상에 관한 책 '형성 중에 있는 자유정부: 미국 정치사상 독본'은 롤즈에게 '정치적 정의' 개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후 롤즈는 코넬대학교에서 2년 동안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1949년에는 마가렛 워필드 폭스와 결혼해 슬하에 네 명의 자식을 거두었다. 마가렛은 예술과 예술사를 공부했으며, 평생 동안 롤즈의 원고를 교정하고 서체를 개선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롤즈는 프린스턴대학교 철학부 전임강사로 일했으며(1950~52),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대학에서 2년간 연구했다.

1953년에 코넬대학교의 철학 조교수로 초빙됐으며, 1955년에 '규칙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Rule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롤즈는 '보편적인 실천을 정당화하는 것'과 그런 보편적 실천으로 포용할 수 없는 '특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 고심했다. 우리는 보편적인 규범을 지키려고 할 경우에 그것을 어기지 않으면 안 될 특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경우가 있다.

칸트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도덕법으로 제시했을 때, 선한 일의 경우에도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을 숨겨준 선한 주인은 "유대인을 숨겨주었는가?"라는 게슈타포의 물음에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규칙 이외에도 특별한 경우를 배려하는 또 다른 규칙을 상정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1956년에 롤즈는 다시 코넬대학교의 부교수로 승진되고, 1958년에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는 두 번째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롤즈는 '정의'를 사회제도나 규율체계에서 덕목을 실천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정의의 두 가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첫째로 동일한 규율체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개인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기본권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에만 불평등은 허용될 수 있으며, 이 경우에 불평등을 초래하는 직위와 직책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내용들은 그의 주저 '정의론'에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이루고 있다.

롤즈는 1959년부터 2년간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1960년에는 MIT의 교수로 초빙됐다. 그리고 1962년에는 다시 하버드대학교의 철학교수로 초빙된다. 1969년부터 2년 동안 스탠포드대학교에 머물렀으며, 1971년에 그 유명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펴냈다. 이 책은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바이블이 됐다. 그는 여기에서 정의의 두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정의의 제1원칙'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평등의 원칙'이라고 한다. '정의의 제2원칙'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할 수 있고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서 직책과 직위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할 경우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차등의 원칙' 또는 '불평등의 원칙'이라고 한다.

롤즈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원초적 상태'이다. 평등의 원칙은 원초적 상태에서 완전하게 보장된다. 그러나 그것은 곧 다른 사람에 의해 침해될 수 있다. 사람들의 욕망과 능력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에 우리 사회는 곧 바로 무정부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롤즈는 불평등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민주적 절차에 관해 설명한다.

자유민주사회에서 대통령, 장관, 시장,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 등은 일반 구성원들이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들의 자유를 통제하면서까지 모든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갖는다는 원초적 상태에서 이같은 불평등이 초래된 배경과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롤즈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초적 상태에서 가장 이익을 적게 보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최대이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그 수많은 지위와 직책들은 공정한 경쟁의 원리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롤즈는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철학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1974년에 롤즈는 미시간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냈으며, 1979년에 노벨상 수상자인 케네쓰 애로우의 후임으로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 대학교 교수로 초빙됐다. 그리고 1980년에 그는 존 듀이 강연에 초빙됐고, 강연 원고 '도덕이론에서 칸트의 구성주의'라는 글을 '철학 저널'에 게재했다. 1986년에 그는 옥스포드에서 연구년을 보냈으며, 1991년에 정년으로 퇴임했다.

롤즈는 1993년에 '정치적 자유주의', 1999년에 '만민법'과 '논문집', 그리고 2000년에 '도덕철학사 강의'를 출간했다. 앞의 두 책은 '정의론'을 보다 구체척인 현실정치와 법적 체계에 적용한 것이며, 뒤의 두 책은 그 동안 발표한 논문들과 도덕철학에 대한 강의들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존 롤즈의 철학에 대한 연구는 1985년에 롤즈의 주저를 번역한 황경식 교수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 책은 1990년까지 '사회정의론'이라는 제목으로 서광사에서 발행됐으나, 2003년부터는 출판사를 이학사로 옮겨서 '정의론'이라는 이름으로 개정했다.

그밖에 '공정으로서의 정의'(서광사 1988), '정치적 자유주의'(동명사 1999), '만민법'(이끌리오 2000)이 번역 소개됐다. 국내학자들의 롤즈 연구서로는 황경식의 '사회정의의 철학적 기초'(문학과지성사 1996), 염수균의 '롤즈의 민주적 자유주의'(천지 2001), 정원섭의 '롤즈의 공적 이성과 입헌민주주의'(철학과현실사 2008) 정도에 그치고 있다.

김 진 (울산대 교수·제22차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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