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8시부터 방송3사가 생방송한 "대선 후보 합동토론"의 시청률이 33.8%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달 22일에 있었던 "노무현-정몽준후보 단일화 토론"(30.9%), 27일에 있었던 "이회창 후보 토론"(30.3%)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한 셈이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티엔에스(TNS)미디어 코리아는 4일, KBS(15.5%), MBC(12.7%), SBS(5.6%)의 3개 방송사 시청률 합계가 33.8%였다고 전하고 있다.

 첫 텔레비전 합동 토론 후 각 당은 제각기 자기 당 후보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기에 여념이 없다. 토론을 지켜본 일반 국민들(필자를 포함하여)의 평가는 엇갈리는 듯하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각 후보들이 토론에 대비해 매우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역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텔레비전 후보토론은 우리의 천박한 선거풍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디어와 선거"라는 텔레비전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텔레데모크라시(Teledemocracy)의 시험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한 일반 유권자와의 만남은 과거 대규모의 청중동원을 하나의 정치적 세(勢)로 과시하던 고질적 선거유세를 없애고, 천문학적인 선거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과거의 선거 환경을 상당히 개선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이 안방에서 차분히 후보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예전과 같은 선거 과열과 소모적 갈등을 막는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텔레비전 토론은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미디어가 가지는 특성상, 유권자들에게 보내지는 메시지 전달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한다는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를 앞세움으로서 구체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텔레비전 미디어를 이용하려는 각 후보들에게는 새로운 정치를 희망하는 국민들을 오도할 수 있도록 할 유혹의 마법상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31년 만에 이루어지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양자 구도의 이번 대통령 선거는 "보수 대 진보"와 "세대교체"가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이다. 그러나 투표율은 97년 선거(80.7%)보다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으로 인한 중산층의 확대, 그리고 현 정권 하에서 일어난 수많은 부정부패 사건들이 국민들을 정치에 대한 불신을 깊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국민정서를 배경으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이미지를 중시하는 "미디어정치"이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존 레논(John Lennon)의 이메진(Imagine)을 비지엠(BGM)으로 삽입,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눈물편)라는 카피로 완성되어지는 의 텔레비전 광고를 방영, 현재 후속편인 "유쾌한 정치 개혁편"이 보니 엠(Boney M)의 바하마 마마(Bahana Mama)와 함께 화제이다. 노후보의 중심 지지층인 20, 30대 청년층의 감성에 소구하는 이 광고는 유권자의 약 49%를 차지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불신이 강하여 투표율이 매우 저조한 젊은 세대를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하여 투표소로 발길을 옮기도록 하려는 노후보 진영의 핵심전략이기도 하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중년층과 보수층의 중심 지지층은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부동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텔레비전 광고에 집중하고 있다. 폭주하는 버스를 국가운영에 비유하면서 "누가 운전하면 안심이 되십니까?"라고 안정감을 강조하는 이미지전략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난번 대선 때부터 대규모 선거집회가 규제됨으로서 각 정당은 텔레비전를 통한 각 후보자의 이미지 소구를 위한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3김 시대와는 달리 노·이 두 후보의 정치적 역량과 본성(本性)이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미지수이며 미디어정치를 통한 이미지 전달만이 그 비중을 더하고 있다는 염려이다. 정책은 행방불명이고 이미지와 붐(Boom)으로 대통령이 정해지는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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