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통의 전문성에 총체적 혁신 계속 추구
도요타·도라야 등 성공적 가업승계도 밑거름
CEO 바뀌어도 '직원 존중'가치 지켜 노사상생

울산에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부터 삼창기업, 성진지오텍, 덕양에너젠 등 든든한 중견기업까지 1000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짧게는 20~30년에서 많게는 반세기에 이르도록 국가경제발전을 주도하며 활발한 기업활동을 영위하고 있으며, 현재 모든 기업의 꿈인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산업과 기업 역사가 짧아 우량 장수기업들이 생겨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장수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 제도적 장치 부족 등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경영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울산지역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계속 유지해 앞으로 100년을 넘어서는 장수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글로벌 초우량 장수기업들의 비결을 벤치마킹하고, 정부차원의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뒷바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 장수기업, 한우물 경영 속 끊임없는 변화 추구

미키모토, 토라야, 라이온, 도쿄기카이 등은 일본 도쿄 인근에 위치한 대표적 장수기업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50% 이상의 독보적인 제품 브랜드를 갖고 있다.

미키모토는 '진주보석 가공', 토라야는 '전통과자', 라이온은 '사무기기', 도쿄기카이는 '고속윤전기' 분야에서 각각 국내 최고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에서도 자사 제품 브랜드에 대한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들 브랜드가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수백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미키모토는 보석 가공·판매 외 다른 사업에는 한 눈을 판 적이 없다. '세계 최고의 보석을 만들어 이를 소유하는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가치를 선물한다'는 창업주 미키모토 고키치 (御木本 幸吉1858~1954)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오직 한 우물만 판 결과, 미키모토의 보석은 세계 최고의 명품 반열에 올랐다.

500년이라는 기업 역사를 이끌어 온 도라야도 전통과자 하나에 기업 생명을 걸었다. 도라야는 일본의 역사와 풍토로 길러진 일본식 과자의 맛을 후세에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수백년 간 전통과자 하나에 집착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오직 전통과 역사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한우물 장인정신을 지키되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도라야가 일본식 과자의 맛을 후세에 충실히 전달하되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 현대인의 입맛에도 맞는 새로운 과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 온 점이나 미키모토가 세계속의 보석을 지향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젊은층을 겨냥한 '패션 쥬얼리' 상품 등으로 보석의 대중화를 꾀한 것은 모두 한우물 속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 것이다.

미키모토 도시시게 유키코 홍보이사는 "지금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한눈팔지 않고 한우물 파기, 그리고 남들이 못 만드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내려는 '모노츠쿠리 정신'이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며 "역사와 전통이 바탕이 된 전문성으로 승부하되 말 그대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는' 총체적 자기 혁신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활한 가업승계가 장수기업 밑거름

한우물을 파는 장인정신과 함께 일본 장수기업들이 갖고 있는 공통분모 중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가업승계이다.

일본의 대표기업 도요타의 경우 오너 가문이 3대째 경영권을 이어온 가족 승계 경영 기업으로 유명하다. 창업주인 도요다 사키치로부터 장남인 기이치로(1937년 도요타자동차 설립),손자인 쇼이치로(현재 도요타자동차 명예회장)까지 도요타 경영권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이어졌다. 지금은 쇼이치로 명예회장의 장남인 아키오 부사장(51)이 경영권 승계를 준비 중이다.

도라야, 미키모토, 라이온, 도쿄기카이 등도 수백 년 째 오너 가문이 경영권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 기업들이다. 울산 기업들 가운데서도 40년 역사를 이어온 덕양에너젠, 송원산업 등은 모두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2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 브랜드를 창출한 기술력이 중간에 끊기지 않고 이어져온 비결은 바로 가업승계가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라이온의 쿠스다 신타로 영업부장은 "창업주가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든든한 기업을 만들어도 이를 이어받을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면 그 기업의 운명은 '바람속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다"며 "라이온이 216년간 수많은 부침속에서도 기업을 꿋꿋이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가업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된 후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원존중과 상생의 노사관계도 핵심가치

장수기업은 대를 이어 CEO가 바뀌더라도 '직원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를 일관되게 지켜오며, 노사 상생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키모토는'세계 최고의 제품 생산을 위해서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경영 이념 아래 종업원 존중을 최우선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라야도 직원을 최고 자산으로 인정하면서 철저한 복리후생제도로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지역 장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덕양에너젠, 한주금속 등 지난 20~40년 동안 기업을 이끌어온 최고경영자(CEO)들은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고 직원 의견을 청취하며, 회사에는 노사 간 가족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삼양사 울산공장 노조의 경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울산지역 다른 노조들이 파업 동참을 종용받자 설비점검기간에 파업을 해 회사의 피해를 '0'으로 만들기도 했다.

국내 대표 장수기업으로 존경받고 있는 유한양행은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과 노조위원장, 대의원이 정기적으로 연수회를 갖고 노사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토라야 미무라 시게키 홍보부장은 "가장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은 회사도 경영진도 기계도 아닌 바로 종업원의 손"이라며 "종업원은 모든 경영활동의 최우선 가치이며, 우리 회사는 노사간 의사소통을 위한 시스템을 원할하게 구축하고 있어 따로 노조가 필요없다"고 말했다.

글=권병석기자 ·사진=임규동기자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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