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기 100여곳 가업 승계 앞두고
과도한 상속·증여세에 '전전긍긍'
안정적 기업 경영 위한 대책 서둘러야

알루미늄 휠 전문 생산업체인 한주금속(주)(울산시 울주군 화산리·대표이사 정삼순)은 연 매출액이 1000억원에 이르는'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정삼순(57) 사장은 지난 95년 창업주인 남편 이중희씨가 암으로 타계한 후 회사 경영을 이어받았다. 이후 제품개발, 생산, 영업을 도맡아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 지금의 한주금속을 키워냈다.

한주금속은 창립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매출목표 2000억원, 영업이익률 10% 달성을 목표로 하는 제3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처럼 앞만 보며 달려 온 정 사장은 최근 후계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난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이용진(35)씨를 불러들여 상무로 근무하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씨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현재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정씨는 이런 아들이 든든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다.

무엇보다 앞으로 정 사장이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경우 수백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는 커다란 부담이다.

정 사장은 "얼마 전 주변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은퇴를 앞두고 아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다 자본금 12억원짜리 회사를 물려주는데 150억원의 상속세가 나와 결국 사업을 접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다행히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의지가 있어 2세 경영자를 낙점하지 못한 다른 회사보다는 마음이 편하지만 거액의 상속세는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과도한 상속·증여세 가업승계 최대 걸림돌

현재 울산지역 중소기업 창업 1세대들의 고령화로 가업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가업 승계를 위한 별다른 정부의 지원이 없어 지역 중소CEO들은 가업 상속에 애를 먹고 있다.

부산울산지방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창업 세대가 은퇴 연령에 이른 중소기업은 전체의 16.1%로 추산되며, 울산지역에만 줄잡아 100여곳의 크고 작은 중소제조업체가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거나 승계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한결같이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이 가업승계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가업 승계를 아예 포기하는 사례마저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캐나다, 호주, 스웨덴, 홍콩 등은 가업승계 기업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전면 폐지했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도 기존 사업을 지속할 때는 상속·증여세 감면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과표 30억원 이상 기업)은 1994년 10%에서 96년 45%,2000년 50% 등으로 오히려 계속 인상돼왔다.

더욱이 상속세법상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0년부터는 중소기업 최대주주가 보유주식을 넘길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의 대가로 세금을 추가로 더 내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세금을 납부하려면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처분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이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20년 이상 된 중소기업 1879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8.2%의 중소기업 CEO들이 과중한 조세부담이 가업승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이 가업승계를 할 때 최대 고민은 세금으로, 세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며 "수년전부터 중소기업과 관련 기관이 상속세 감면 또는 폐지 등 가업승계의 제도적 지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금까지 커다란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승계 시스템 서둘러 구축해야

전문가들은 가업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같은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만간 감당키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와 정부가 적극 나서 중소기업의 안정적 영속을 뒷받침할 효율적인 승계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 창출과 경영성과 측면에서 효율이 검증되고 있는 탄탄한 중소기업이 대를 잇지 못할 경우 자칫 주요 기반산업의 미래까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울산지역 중소기업과 관련 기관들 역시 일찍부터 가업승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6월30일 성공적인 가업승계와 지속적인 기업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울산에서는 처음으로 중소기업 2세 경영인들의 모임인 '차세대기업클럽 NECUS(Next Entrepreneurs Club Ulsan)'이 결성됐다.

NECUS는 울산, 경주, 양산지역의 중소기업 경영후계자 33명으로 구성됐으며,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특별회원 4명이 참가해 법률·세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NECUS 이치윤(덕양에너젠 대표이사) 초대회장은 "NECUS 클럽은 단순한 2세 경영인들의 친목모임이 아닌 성공적인 가업승계와 지속적인 기업성장을 위해 준비된 경영인들의 모임"이라며 "앞으로 경영 후계자들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교환과 자질향상을 통해 미래 기업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에서도 2세들을 대상으로 오는 9월부터 총 4회에 걸쳐 2박3일 일정으로 상속 세율과 상속 요건 등 가업 승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센터는 또 내년 초 개설을 목표로 3개월 과정의 경영 후계자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중소기업 가업승계를 위한 구체적인 세제 개편안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15일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16명은 중소기업 2세 경영인이 기업을 이어받을 때 상속세 공제액을 기존의 2배로 늘리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15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가업 상속시 상속세를 2억원 또는 상속금액의 20% 중 큰 금액(30억원 한도)으로 공제해주고 있지만,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4억원 또는 상속액의 40% 중 큰 금액(60억원 한도)으로 공제폭이 늘어나고,공제 대상 기업 경영 자격도 15년에서 10년으로 완화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나성린 의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활성화와 지속적 성장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이미 호주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은 중소기업 가업에 대한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고 있는 추세여서 우리나라도 더이상 세제개편을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글=권병석기자 ·사진=임규동기자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