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에 연어가 돌아왔다. 처음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어는 해마다 더 많이 태화강으로 돌아오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빠르게 성장하던 울산은 뒤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달려 왔다. 태화강도 산업화의 바쁜 걸음을 따라 빠르게 잿빛으로 변했다. 강은 악취가 날 정도로 죽어갔지만, 이제 울산은 전국에서 최고로 잘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 후 각계에서 울산의 기적을 이룬 태화강을 살려야 한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시(市)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흥하여 에코폴리스를 선언하고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해 성공하게 되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성공사례가 되었다.

우리 시는 태화강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을 지금도 쏟아 붇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전설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태화루(太和樓)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또 더불어 추진되는 생태공원조성 사업은 시민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생태공원에는 생태체험공간 등 많은 시설이 들어선다. 물론 막대한 예산도 뒤따라야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시민들의 의견을 공모해 조성계획에 반영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시는 지금 53만㎡의 공간에 너무 많은 그림을 그리고, 그곳을 채우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시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다양한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치라 생각된다. 그러나 강의 둔치는 자연 그대로 둘 때 가장 아름답다고 평소 생각해왔기에 우려가 앞선다.

필자가 뛰어놀던 어린 시절 태화강의 모습을 잠시 그려본다. 여름의 태화강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벌거숭이에 까맣게 그을린 악동들의 함성이 지금도 귓전에 선하다. 용금소에서 다이빙을 하기도 했고, 썰물이면 모래톱을 따라 재첩도 줍고 물놀이도 할 수 있었다. 당시 태화강은 지금처럼 도시 인프라가 구축되진 않았지만, 유쾌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우리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금 대숲생태공원이 생기고, 전국 어른들을 대상으로 태화강 수영대회를 개최하고 용선대회를 하고 요트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는 사이 울산의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줘야 할 태화강은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시의 성내천과 양재천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강가에 풀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곳엔 아이들이 개구리 마냥 와글와글 덤벙거리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우리 울산에도 저런 시설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바로 저런 것이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저런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선시대 관직에 부임하는 목민관이 취해야할 덕목 중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소중히 여기고 다스리는 것을 최고로 꼽았다. 지방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광역시장, 구청장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행정법규의 뒷장에 가두어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국가하천에 풀장을 만들 수 없는 법적 제약(制約)을 말하고, 홍수의 범람을 우려하는 측은 유속에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한다. 기우(杞憂)일 수 있다. 강상(江上)에는 최소한의 탈의시설만 갖추고, 풀장은 지상으로 돌출되는 시설이 아니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조금의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검토해 볼 일이다.

반드시 생태공원 한편에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을 만들자. 이는 우리가 낳고 기른 울산의 아이들에게 평생 간직할 값진 추억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아닐까.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추억은 또 그리움이 되고, 태화강은 그들을 키운 8할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길 울산시 중구의회 운영위원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