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함께 살아가는 법

네팔 출신 비누씨, 한글공부에 통역 도우미까지 바쁜 주말
1218이주노동자센터서 외국인 근로자 치과 진료 진행 도와
한국-네팔 공동체 만들어 양국 소외이웃에 봉사하고 싶어

"고향 떠난 외국인 친구들의 울산 적응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네팔이 고향인 비누(32·BINOD)씨는 한국 생활 5년차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중구 학성동 1218이주노동자센터를 찾는다. 이 곳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실시하는 무료 치과 진료 진행을 돕기 위함이다.

비누씨의 일요일은 하루 종일 일정이 꽉 짜져 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한글교실에서 열심히 한국말을 배운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난 뒤 바로 오후 5시까지 치과 진료를 할 때 옆에서 통역을 담당한다.

센터에 도착하기 전에도 비누씨는 바쁘다. 경주 입실에서 울산까지 오는 길도 길이지만 치과 진료를 받기로 했는데 센터 위치를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가 있으면 어디든 만나서 함께 길을 나서기 때문이다.

비누씨는 "외국인 친구들이 울산에서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내가 한국말을 좀 잘 하니까 부지런히 다니면 그 친구들이 편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비누씨의 외국인 친구 돕기는 시도때도 없다. 일을 하다가도 외국인 친구가 다쳤거나 월급을 못 받았다는 연락을 받으면 만사 제쳐두고 뛰쳐나갈 만큼 그는 열정적이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잘린 적'도 있다.

그는 "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적지만 친구들이 처한 상황을 듣고 센터에 설명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준다"고 말했다. 비누씨는 센터와 외국인 근로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비누씨는 현재 네팔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다. 울산에는 약 70여명의 네팔인이 있는데 그 중 11명이 주축이 돼 모임을 끌어가고 있다. 공동체는 말 그대로 네팔인들이 화합을 도모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평소 남돕길 워낙 좋아하는 데다 공동체 대표까지 맡은 비누씨이기에 그의 전화기는 하루에도 도움을 구하는 벨이 몇 번씩 울린다.

특히 한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인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돕는다. 이들은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어 비누씨가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비누씨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한국에 와서 겪는 어려움은 똑같다"며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들도 아프거나 월급이나 퇴직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에 전화로 이야기를 듣고 센터에 문의한 뒤 해결책을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글로 된 센터의 각종 자료를 네팔어로 번역해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비누씨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뛰어난 한국어 실력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외국인 근로자를 도와 통역을 할 만큼 실력이 늘었지만 처음엔 그도 한국말을 몰라 겪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 때 비누씨는 질문이 뭐든 대답은 무조건 "예, 괜찮아요"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불량제품을 납품할 뻔한 아찔한 일이 있었다. 또 비속어로 비누씨를 부르는 회사 직원 말을 따라했다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그는 이제 대화하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를 일은 없지만 쓰고 읽는 부분이 부족해 아직도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비누씨는 꿈이 있다. 그는 "가능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 계속 외국인 근로자를 도우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을 최고로 잘한다. 비누씨는 한국에 오기전부터 네팔의 한 고아를 후원하고 있다. 7살이던 아이가 지금은 14살이 됐다.

비누씨는 "네팔에 있을 때는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조금밖에 못 도왔는데 지금은 고정적으로 도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담배를 줄인 돈이면 네팔에서는 한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는 돈이 된다는 말로 설득해 벌써 2명의 한국인이 네팔의 아이들의 학비를 후원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한국과 네팔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양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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