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사적 제312호·전남 화순군 화순읍)를 처음 찾아간 것은 10년도 더 됐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발간한 한국의 재발견 시리즈의 화순군란에 실린 한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작가 강운구씨가 찍은 와불사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신비감이 온몸을 감쌌다.

 초록색버스(고속)를 타고 다시 빨간버스(완행)를 타고 다시 십리는 "직한 길을 걸어 어렵게 찾아간 운주사는 조금도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아니, 감동 그 자체였다. 와불에 채 이르기도 전에 마치 아이들이 진흙으로 만들기를 한듯 멋대로 생긴 수많은 탑과 불상들이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서 있는 운주사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궤도를 벗어나 역사 속의 어느 한 페이지에 들어가버린 듯했다. 신라문화권에 익숙해 있던 터라 독특한 모양의 생경함까지 겹쳐져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운주사를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3, 4년이 흐른 뒤였다. 혹시 운주사가 다른 사찰처럼 호화스럽게 바뀌고 아무렇게 서있던 불상을 한 곳에 모으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이었다. 빨간버스가 아닌 승용차 편으로 절에서 조금 떨어진 넓은 빈터에 차를 세울 수 있었던 것 빼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불상은 여전히 순박했고 탑은 변함없이 소박했다. 와불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지난달 다시 운주사에 갔다. 주차장이 번듯하고 절집도 새단장했다. 사람들도 북적댔다. 소중한 보물 하나가 마치 달아나버린 것은 아닌가, 입구부터 불안했다. 우리나라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서 남아난 문화유산이 있던가.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넓직한 터에 탑들이 예전대로 줄지어 서있고 불상은 삐죽삐죽 불거진 암벽을 처마삼아 삐뚤삐뚤 그대로 서있었다. 어느 탑이나 불상도 정교함이라곤 없다.

 절집에 이르기까지 넓은 풀밭에 한가롭게 자리하고 있는 탑과 불상이 수십기다. 고려중기인 12세기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돛대 역할을 한다는 9층석탑(보물 796호)은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며 석탑 옆면의 꽃문양이 이색적이다. 둥글넓쩍한 호떡을 쌓아놓은 듯해 떡탑이라고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은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둥근모습을 하고 있는 6층탑이다. 팔작 지붕 형태로 그 안에 석불좌상 2기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는 석조불감(보물 제 797호) 등 절집 뒤쪽 산위에 까지 석탑 21기, 석불 93구가 전해진다.

 누워있는 2기의 불상 "와불"은 산중턱에 있다. 도선국사가 하루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불상을 일으켜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는 말도 전해진다

 우리나라 답사의 대표적 지역으로 꼽히는 남도답사라면 으레 강진·해남권을 꼽지만 그래도 남도 답사에서 절대 빠뜨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은 곳이 곳이 화순·영암권이다. 화순군에는 운주사 외에도 2000년 12월2일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고인돌지역이 있다. 이 일대 고인돌은 160개군에 1천323기가 분포하는데 영산강유역에 56개군 535기가 있으며 화순군이 전체 고인돌분포수의 40.4%를 차지하고 있다.

 운주사에 가까운 도곡면에는 지난 96년 본격 개발된 도곡온천이 있다. 숙박시설이 풍부하게 들어서 있다.

 월출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영암권도 의외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도갑사와 왕인박사유적지, 선사시대 주거지 등이 모두 빠뜨리기에는 아쉽다. 강진군에 속하기는 하나 강진·해남권 답사 때보다 영암권과 묶는 것이 더 가까운 무위사(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월남사터(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도 함께 볼 수 있다.

 월출산의 대표적 절집인 도갑사(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는 소박한 멋으로는 단연 첫손 꼽힌다. 국보 50호인 해탈문을 갖고 있다. 조선 초기의 목조건축으로 특이한 생김새를 가졌다.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백제의 인물 왕인박사 유적지(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전남지방기념물 제20호)는 도갑사에서 멀리 않다.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유적지 정문인 백제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일본에서 헌정한 왕인정화비가 있고 맞은편에 전시관이, 문 하나를 더 들어가면 안쪽에 왕인 사당이 있다.

 영암구림리토기요지(사적 338호·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도 가깝다. 왕인박사유적지 입구에서 남송정 마을로 들어가는 구릉에 있다. 도자기나 그릇 등을 굽던 2기의 가마터가 복원돼 있고 도자기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도기문화센터(061·470·2566)가 조성돼 있다. 가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옮겨가는 전환기의 것으로 회흑색토기 조각을 비롯해 다양한 용도와 모양의 자기들이 발견되었다.

 선사시대의 다양한 주거지를 조성해 놓은 장천리 선사시대 주거지도 역사 공부 삼아 한번쯤 가볼만하다.

 월출산 아래 군서면 해창리도 온천지역이어서 숙박시설이 많다. 도곡온천에서 하루를 묵기에 아쉬움이 있으면 밤늦게라도 이동해 이곳의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영암권을 둘러보는 것도 요령이다.

 월남사터에는 절집 없이 삼층석탑(보물 298호)과 진각국사비(보물 313호)가 자리하고 있다. 월남사 삼층석탑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씨가 고려시대 탑으로 백제양식이 돋보이는 탑이라며 꼭 보라고 권한다.

 무위사는 한적하고 풍성한 절집이다. 경상도의 격식을 갖춘 절집과는 완전히 다른 소박함이 아름답다. 국보 13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해 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 507호),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보물1312호) 극락전아미타후불벽화(보물1313호) 극락전백의관음도(보물1314호) 극락전 내벽사면벽화(보물1315호) 등 볼거리가 많다.

 1430년 지어진 극락보전은 겸손하고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들어있다. 내부는 기둥이 없이 널찍하고 인물화가 오도자의 신필이라 전해지는 보살 및 천인상이 많다.

 무위사와 월남사 사이에 태평양 설록차를 만드는 차밭이 있다. 30만평에 이르는 차밭을 견학하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영암지역의 음식으로는 갈비와 낙지를 넣어 끓인 갈낙탕, 기름진 개펄을 먹고 사는 장뚱어탕,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 살짝 구워서 내놓는 낙지구이, 양념이 독특한 민물장어구이 등이 특미로 꼽힌다.

 울산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광주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직진하다가 순환도로를 타고 광주대학교 쪽으로 가서 도곡온천-화순고인돌-운주사에 이른다. 동광주인터체인지에서 도곡온천까지는 20여분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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