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일엄마들의 사랑

한국어 배우러 간 결혼이주여성 자녀 돌보기 봉사
간식 먹이고 놀아주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
다문화 이해는 물론 한국식 육아법도 살짝 일러줘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30분이 되면 북구종합사회복지관 2층에 위치한 다문화카페 예소담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앞치마를 곱게 두른 4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없다. 한 쪽에서는 장난감으로 씨름중이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우유 먹이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한글 눈 틔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엄마들을 위해 보육도우미로 나선 자원봉사자들이다. 봉사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평균 10여명의 다문화가정 아동의 일일 엄마가 된다.

아이들마다 생김새와 성격이 다른 만큼 돌보는 방법도 다 다르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은 '닥치는(?)'대로 아이들을 돌본다.

잠이 오는 아이는 안아서 재워주고 배가 고픈 아이는 엄마가 챙겨준 간식을 먹이고, 지루해 하는 아이는 함께 놀이터를 한 바퀴 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저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맞춰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 진짜(?)엄마들이 나타난다.

때문에 이 곳은 한글을 배우기 위해 북구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작은 유치원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믿고 맡길 수 있는 친정집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겠다.

자원봉사자들은 짧게는 2개월, 길게는 1년6개월 정도 보육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정식으로 보육도우미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돼도 서로 오고가며 눈인사를 하던 터라 이들은 결혼이주여성과 두터운 신뢰를 쌓고 있다.

한국말이 서툰 결혼이주여성이 아이가 아파 함께 병원에 가달라고 하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동행한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외국인 며느리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풍부한 육아경험을 살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이유식 만드는 법 등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지금은 육아문제와 관련해 서로 편하게 의견을 교환하지만 처음에는 다른 육아법에 놀란 적도 있다.

배미숙(45)씨는 "우리나라 엄마들은 처음 아이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고 나면 궁금해서 괜히 한 번 들여다보고 하는데 외국 엄마들은 다르더라"며 "아이를 맡겨놓고 바로 한글을 배우러 교실로 가는 데 나로서는 이게 차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배씨는 그렇게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초보 외국인 엄마들을 위해 아이들을 적당히 감싸안는 법을 일러준다.

아이들이 많을 때는 18명 정도 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성격을 다 꿰뚫고 있다.

똑같이 잠투정을 해도 어떤 아이는 잠깐 안아주면 스르르 잠드는가 하면 젖병을 물려줘야 눈을 감는 아이도 있다. 이렇듯 아이들마다 개성이 넘치지만 한 가지 한국말이 조금 늦다는 점은 비슷하다.

1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일남(52)씨는 "엄마들이 한국말이 늦다보니까 아이들도 말이 늦는 편"이라며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빨리 배울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딸 양정인(23)씨도 보육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엄마 따라 놀러온 복지관에서 너무 귀여운 아이들 모습에 반해버린 양씨는 바로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그는 "외국인 엄마들이 또래인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도 다 내 조카같이 느껴진다"며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깐 일을 쉬고 있는데 다시 일하러 가게 되면 아이들을 못봐서 섭섭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눈에 밟혀 봉사활동을 그만두려해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휴대폰으로 아이들 얼굴을 찍어뒀다가 집에 가서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볼 정도다.

이제는 단순한 봉사활동의 차원을 넘어 아이들과 결혼이주여성의 엄마가 된 마음으로 생활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가 말을 따라하거나 똑바로 걷게 되면 기뻐하고 넘어지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속상해 한다.

하루하루 눈에 띄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이 꼭 내 아이를 처음 키울 때 받았던 것과 같을 정도라고 했다.

박순희(49)씨는 "엄마들끼리 서로 의지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서로 먹을 것을 나누면서 예쁘게 커간다"며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미뤄뒀는데 이 일을 시작하기 정말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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