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 오늘은 훈민정음 반포 562돌이 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경일이다. 먼저 한글과 우리말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국어란 글자가 아닌 말이다. 그것도 나라말이다. 우리의 국어는 한국어요, 일본의 국어는 일본어요, 미국의 국어는 영어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글을 만든 것이다.

흔히 한국어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것은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한글을 말하는 뜻이 아니다. 우리말에 '검다'라는 한 낱말에도 형용사와 부사가 무려 80여 가지가 있으며 '아름답다'라는 간단한 낱말도 그 느낌이 다른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우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글자인 한글은 참으로 과학적이고 단순해 세계 100여 종의 글자 가운데 가장 배우기 쉽고 표기하기 쉬운 글이다. 그 중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한글은 음소(音素·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음운론상의 최소 단위) 문자이며, 모음은 언제나 일정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묵음자(默音字)가 없으니 발음하기가 쉽고 참으로 쓰기 쉬운 글자가 아닌가.

한글은 세계 언어 석학들이 인류 최고의 문자라고 칭찬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유네스코가 글자로는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더욱이 유네스코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1397년 5월15일)을 '문맹 퇴치의 날'로 정하고, 문맹 퇴치에 큰 공적을 쌓은 이에게 '세종상'을 수여하고 있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칭송하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다빈치로 극찬했다. 1960년대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과서로 출간된 교재에서 저자인 라이사위는 한글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 체계로 된 문자라고 했다. 또 다른 언어 학자는 한글은 각 음의 음성적 특징을 시각화해 창조적으로 만든 알파벳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자랑스러운 글자를 가진 우리가 우리글과 우리말을 다듬고 가꾸는 노력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지금 우리의 글과 말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독도도 우리 땅이요, 한글도 우리 것이다. 독도를 넘보는 일본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나서고 있는데 반해 한글은 우리 스스로 짓밟아 엉망이 되어가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거리에는 외국어와 외래어가 판을 치고 있다. 제대로 읽기도 어렵고 무슨 뜻인 지도 모르는 글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특히 아파트 이름은 너무 어려워 한 번 보고는 도저히 기억할 수조차 없다. '타워팰리스' '미켈란쉐르빌' '아카데미스위트' '××하이케리온' '롯데캐슬모닝' 등 정말 부르기가 어려운 이름들이 많다. 이름은 보통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이라야 하지 않겠는가. 바깥말로 이름을 지으면 아파트 값이 올라가고 더 고상한 느낌을 주는 걸까? 택시기사들도 아파트 이름이 너무 어려워 찾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간판이나 상품명에서도 우리말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한글날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10월9일을 국경일로 정해 놓고 그냥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글을 기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릇 법이란 모두가 지키자고 만든 건데 못 배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먹물깨나 든 사람들까지도 지키지 않는 법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말 맞춤법이다.

요즘 여러 언론사에서는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어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특히 KBS에서는 한국어 능력시험제를 실시하고 있고 이 시험 성적을 신입사원 채용에 적용하고 있다. 적이 안심이 되고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 미국에 유학을 하려면 토익(TOEIC) 또는 토플(TOEFL)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 기본이듯이, KBS뿐만 아니라 공무원 임용 시, 모든 언론사 입사 시에는 반드시 '국어능력인증시험'을 반영하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곧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는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김진수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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