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정국의 몇 가지 특징은 첫째, 민노당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선거운동을 통해서 민노당은 ‘더불어 토론하는 동반자’의 지위를 획득하여 무시하지 못할 제도권 정치세력으로 진입하였다.

 둘째, 미디어 선거가 정착했다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토론할 수 없었다는 것은 한계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는 동원과 금권으로 얼룩진 우리 나라 선거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준 것은 사실이다. 셋째, 네가티브 선거방식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전의 경우 한나라당의 노무현 후보에 대한 도청정치론, DJ 양아들론, 부정부패론은 가히 폭발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거듭된 선거를 통하여 흑색선전에 대한 내성을 단단히 기른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금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부동층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0%에 해당되는 약 700만명이 아직도 선택대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층의 수가 워낙 많고 보니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있는 선거형국이다.

 부동층이 존재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각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강하여 마음이 혼란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이회창 후보는 ‘부정부패 원조당’이라서, 노무현 후보는 ‘DJ당’이라서, 권영길 후보는 ‘불안 조성당’이라서 거부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어떤 이유에 의해서건 부동층이 이렇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이들은 기존의 정치에 식상하지만 지지할만한 새로운 정치 세력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의 문제에 대하여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정치불안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전국 400여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선유권자연대가 발표한 ‘제16대 대선후보 정책종합평가’는 고무적이다. 아직 지지할 대상을 찾지 못하여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냉수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현재 ‘후보 개인’을 지지할 뿐이지, ‘해당 후보의 정책’을 선호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 연대의 공약평가가 과연 시민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유권자 연대의 이러한 노력은 시민사회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모범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이만큼 시민사회 영역이 확대, 유연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듯한 일이 아닌가? 관심있는 독자들은 지금 www.ivote.or.kr을 접속해보길 바란다.

 유권자 연대는 우리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3대 청산과제를 국가보안법, 호주제, 부패청산으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10대 주요 정책과제를 설정하였다. 개발시대 패러다임 극복, 지방분권과 자치, 한반도 평화보장, 공교육정상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후보는 한반도 평화보장 및 남북협력 자세 등에서 ‘보수적 또는 매우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노후보는 통일기반 구축 등에서 ‘개혁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사안에 따라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권후보는 시민사회가 제안한 정책과제 대부분을 수용해 ‘가장 개혁적’인 후보로 평가됐으나, 정책실현 능력은 미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주지하듯이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혁신은 국가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다. 금번의 선거과정을 통하여 마침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부패정치, 분열정치, 반칙정치가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국민들은 그 대신 통합정치, 투명정치, 원칙정치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부동층이라면, 오늘은 선거 하루 전, 가만히 앉아서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내일 실천하라.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