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화가 오치환씨(32)가 울산문화예술회관 제4전시장에서 지난 17일부터 마련하고 있는 작품전은 극도의 단순함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 오치환씨는 커다란 화면을 흑과 백색으로만 차와 관련된 형상을 채운 작품 10여점을 내놓고 있다.

 작품의 모티브는 23만8천97㎞를 달린 그의 차. 〈21C〉, 〈자화상〉, 〈Hard day〉, 〈선착순〉, 〈안녕하세요〉, 〈서곡〉, 〈238097〉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의 작품은 몇개의 화면으로 분할한 차의 외형, 지나가는 차가 비친 반사경, 금이 간 앞유리, 기계의 부품들이 정밀하게 그려진 차의 엔진, 먼길·오랜 세월을 달려온 핸들과 집앞에 서있는 200년 된 고목 등이 검정색의 바탕에 흰색으로 남아있는 형체다. 그가 얻어낸 형태만 남겨놓고 모두 새까맣게 칠한 뒤 나머지는 캔버스 그대로 또는 흰색으로 칠했다.

 긴 세월을 지나온 그의 차와 그에 관련된 환경들을 부제로 등장시키면서 시간이 함유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흑백이 주는 강렬함으로 인해 보다 자극적인 주제를 기대할 수도 있으나 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것들에 대한 애틋한 서정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흔히 갖게 되는 "버림"에 대한 사유를 그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런 짐작은 가능하다.

 그간의 그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화려한 색상과 수많은 선은 지극히 단순한 흑백으로 요약됐고 비가시적이었던 형상도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형체들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사고를 반강제적으로 이끌어가는 "기호"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유하는 여유로움도 엿볼 수 있다. 세상과의 타협에는 다소 우둔해 보이는 그는 "굳이 화면을 채워야만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모으는 것에서 버리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짧게 설명한다.

 오치환씨는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서울과 대구, 울산에서 6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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