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삼동면 출강리(出崗里)는 사슴과 표고버섯마을이다. 삼동면 소재지인 사촌리에서 도로를 따라 웅촌 쪽으로 빠져 나오다가 오른편에서 만나는 한 골짜기 깊숙이 숨어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삼동면에서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마을이다. 농가부채로 인해 농촌사람들이 모두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출강리 사람들은 남부럽지 않게 소득을 올리면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모두가 주민들이 부지런할 뿐아니라 개척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출강리 입구에는 "출강사슴마을"이라는 작은 간판이 서있다. 지형이 사슴처럼 생겼기 때문에 사슴마을이라 하는가라는 의아한 생각을 갖고 들어서면 곧바로 사슴농장이 줄을 잇는다. 가장 먼저 출강농원(대표 정성도)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성록(대표 김영호), 여명(대표 차문환), 장생(대표 신재경), 녹향(대표 신기옹), 출강(대표 신민웅) 등 6개의 사슴농장이 여기저기 큰 간판을 달고 서 있다.

 사슴은 곧 마을 주민이다. 사슴이 별도로 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집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울타리만 두르고 있을 뿐이다. 한 농장에 적게는 20~30마리, 많게는 70~100마리씩 기르고 있다. 주민 수가 54가구에 138명인 것과 비교하면 주민 보다 사슴이 몇배나 더 많다. "사슴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사슴농장을 하지는 않는다는 차남환씨(69)조차도 사슴을 성가시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랑을 섞어 "저녁이면 사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고 말했다. 사슴이 이렇게 마을 속에 있으면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하자 "겨울에는 사슴들의 몸이 더러워 약간 냄새가 나고 뿔도 잘려 흉하지만 봄이면 냄새가 하나도 안날 뿐아니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뿔도 멋있게 자라 보기가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출강리가 사슴마을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도회지에 있는 이모씨가 이곳에 터를 사서 별장을 짓고는 관리인을 두고 사슴을 몇마리 기른 것이 출발점이다. 그가 작고한 뒤에 마을 주민이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사슴농장을 시작지 20여년 됐고 그것이 마을로 번져나간 것은 겨우 10년 남짓이다. 몇몇 농장은 3~4년전에 시작했다.

 겨울은 사슴에게 있어서나 출강사람들에게 있어서나 모두 휴식기다. 뿔도 잘려버린 사슴들은 몸 속에 벌레라도 있는 건지 자꾸 흙 속에 몸을 비비면서 한나절을 한가롭게 보내고 있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사람들에게도 겨울은 농한기다. 들판에는 검은 그물로 된 차광막을 뒤짚어 쓴 버섯농장이 그대로 있지만 그 속에 버섯은 거의 자라지 않고 참나무만 서로 어깨를 기대고 줄지어 서 있다. 여름과 가을, 일년에 두차례의 출하기를 모두 넘겼기 때문이다.

 몇년전부터 중국산이 대거 들어오면서 판로도 줄었고 출하가격도 낮아졌다. 게다가 올여름에는 태풍 때문에 기껏 장만해놓은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는 등 손실도 적잖이 입었다. 그래도 표고버섯은 여전히 그들 생활의 전부다.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고 평생과 살아왔기 때문이다.

 논농사만으로 배고픔도 면하기 어려웠던 지난 1970년대 초 울주군 산림조합이 참나무류가 많이 자생하는 출강리의 특징을 살려 표고버섯을 시험재배했다. 주민들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술을 습득하고 본격적으로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김정복씨(70)는 "버섯을 피울 때는 참나무 동강이 하나하나를 세웠다가 눕혔다가 몇차례나 계속하는 고된 작업을 해야 하지만 초창기만해도 논농사에 비해 8배의 소득을 안겨주었다"고 회고하며 "중국산이 들어오고부터는 단가가 많이 낮아졌지만 요즘도 논농사보다는 낫다"고 한다.

 지난 94년 정부가 신농정사업의 하나로 1면1명품을 선정했는데 그 때 출강리의 표고버섯이 삼동면의 1명품으로 선정됐다. 표고버섯 작목반도 구성됐다. 현재 표고버섯 작목반에 23농가가 들어있고 저온저장고 20평, 건조기 5대 등을 공동재산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개인 저장고도 5대나 있다.

 주민들은 "지형적으로 산골짜기이기 때문에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버섯의 육질이 두터운 것이 출강 표고버섯의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출강리는 행정동과 법정동이 하나로 된 단일마을이다. 어느마을보다 단합이 잘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골짜기를 따라 길게 이어진 마을은 입구에서 하출강, 중출강, 상출강으로 불린다. 마을은 중출강에 거의 모여 있다. 하출강에는 겨우 6~7가구에 불과하고 상출강에도 새로 들어선 전원주택까지 10가구 남짓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이름난 인물도 많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자긍심이다. 국회의원(신병렬)도 나오고 장성도 두명(차동렬 박정학)이나 나왔으며 세계적인 공학박사(박정부)도 배출했다. 주민들은 정족산 정기를 뜸뿍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무엇이든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깨어있는 정신 덕택으로 보여진다. 글=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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