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한민국도 이미 유니버설디자인에 빠졌다
아직 활성화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 10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화성시 공공시설물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를 제정했다. 보훈회관을 시작으로 노인복지회관, 여성청소년센터 등 새로 짓는 공공시설에 모두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했다.
경기도 안양시도 사람, 동·식물, 거리, 건물 등 도시 안의 모든 개체간 경계를 없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유니버설디자인을 토대로 한 공공디자인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는 장애인들도 숲길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건지산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열린 숲길을 조성키로 했다.
일본은 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분야 집단들이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단체나 협회를 만들어 탄탄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지만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연구기관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제품 공모전을 벌이거나 전시회를 여는 등 아직 익숙치 않은 유니버설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함께하는 UD실천연대’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등 여러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조직으로 서울의 청계천 개보수 요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는 제품디자인과 환경 및 실내디자인, 시각디자인, 영상디자인 등 분야로 나눠 유니버설디자인 공모전을 열고 있다. 올해로 벌써 3회째다.
가까운 부산 경성대학교에는 국내 유일의 유니버설디자인 전문기관인 유니버설디자인연구센터(센터장 이호숭)가 있다.
이 곳은 지난 2004년 문을 연 이후 유니버설디자인 제품 개발, 산업체 개발 상담 및 디자인 클리닉,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출판, 사용성 평가, 전문인력 양성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려는 산업체의 제품에 대한 디자인 클리닉을 위해 3D 조형기와 레이저 조각기, 뇌파 측정기, 근전도 측정기, 사용자 모니터링 등 장비를 갖추고 있다.
디자인 클리닉의 활동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샤워기에 대한 클리닉 문의가 들어오면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 상관없이 이용하기 편한 지, 샤워기 위치는 적절한 지 등을 일일이 확인한다. 또 사용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실제 집에서 샤워기 근처에 두는 칫솔이나 샴푸 등도 함께 구비한다.
이러한 과정을 연구원 등이 모니터로 지켜본 뒤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나 반복되는 행동 등을 확인해 개선해야 할 사항을 정리, 산업체에 알려준다.
이호숭 센터장은 “제품을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다양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뒤 이를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 주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바로 유니버설디자인 도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유니버설디자인 체험전시관도 운영하고 있다. 체험전시관에서는 이 센터장이 선별한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유니버설디자인 관련 제품 800여개를 볼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아직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프로모션이 중요하다. 그래서 체험전시관을 마련했다”며 “기업이나 일반인들이 이 곳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제품을 보고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필요성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품들은 안전·위생, 생활용품, 전기용품, 장난감 등 종류별로 전시돼 있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배려해 소리와 빛으로 전화가 왔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전화기, 반으로 접었다 펼 수 있는 비상용 헬멧맷, 어떤 자세로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 등 모두 사용자를 배려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들이다. 또 누구든지 사용하기 편하도록 살짝 변형된 젓가락이나 칼, 가위 등도 볼 수 있다.
특히 여러가지 종류의 보행보조기와 지팡이, 원예 제품에서부터 욕조 안 손잡이 등 고령자를 위한 제품들이 눈에 띈다.
이 센터장은 “앞으로 실버산업이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령자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한 제품 개발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한 여러 종류의 제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외국에서도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일반인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나 건축 분야 전문가, 기업 등에서 많이 찾는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9700여명이 체험전시관을 다녀갔다.
체험전시관에서는 고령자 및 장애인 체험도 할 수 있다. 이 체험 코스는 경사로(오르막·내리막)와 점자블록, 불규칙한 표면, 배수구 덮개, 일반출입구(문), 과속방지턱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경사로는 장애인편의시설증진법에 명시된 경사비율 8.3도를 적용해 현실성을 높였다.
보기에는 어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막상 휠체어를 타고 혼자 경사로를 오르고 내려오면 많이 힘들어 이게 정말 법에 명시된 기울기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또 구멍이 나 있는 배수구 덮개를 지날 때면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팡이를 이용하는 노인,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 뾰족한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이 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체험코스에서는 장애인이나 고령자뿐만 아니라 아동, 건강한 성인 등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불편함을 체험할 수 있다.
글=홍은행기자 redbank@ /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