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끝)

제 위치 일깨우고 양보와 겸손 가르친 위대한 스승

1800여리 걸으며 눈에 풍광 담고 가슴에 인내 새겨

걸어온 길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으로 남아

▲ 동해펄프산악회의 백두대간 진부령에서 기념촬영 장면.
백두대간 산행을 끝내고 지인들로부터 ‘고생했다’ 대단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고생을 했는지, 무엇이 대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대간 종주를 계획할 때, 앞서 종주를 끝낸 어떤 사람은 ‘자기 곁에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고 극구 말리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백두대간 종주에 관해서는 찬반양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종주를 끝내고 나니 몇 가지 이유로 ‘참으로 잘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먼저 산은 겸손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선조들이 갖고 있던 전통적인 지리체계인 백두대간의 올바른 이해의 시작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입니다.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되었으니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 또한 산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다고 낮은 곳의 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물 또한 산을 돌아갔으니 양보와 겸손은 조상들이 예로부터 갖고 있던 자연관이었습니다.

실제로 백두대간은 물을 건너지 않고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이어지는 산의 체계를 산경도(山徑圖)라 하여, 산과 물을 따로 떼어 얘기 하지 않고 ‘산은 물이다’(山是水)같은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동수동상(洞水同想)이라, 같은 물을 마시고 살면 생각조차 같아진다 했으니, 아마 이와 같은 자연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드물 것입니다.

백두대간종주를 하면서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담아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들은 태어나서 처음 바라 본 대상을 어미로 각인(刻印)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합니다. 우리도 대간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기억했던 이 땅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린 가슴으로 마주할 때마다, 평생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봐서 눈이 늙지 않을 것 같다’고 한 시인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실거리 1800여리. 결코 짧지 않은 산길을 걸으면서 백두대간, 그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오롯이 담아 두었으니... 평생을 두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름을 느낄 것입니다. 백두대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길이 되어 우리 가슴속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산을 오르느냐고, 그리고 굳이 힘든 백두대간 종주를 고집했느냐고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 선비 홍한주(洪翰周)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제 몸 죽는 줄도 모르고 즐기는 것을 벽(癖)이라 했고, 그 벽(癖)은 사회통념상으로 치(痴)라 하여, 어리석음(愚)을 얘기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은 우직함이 숨어 있는 지혜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백두대간종주는 그런 어리석음이 있어야 가능한 산행입니다.

정조 때 실학자 박제가(朴齊家)도‘자고로 사람이 벽(癖)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했으니, 어찌 보면 큰 어리석음이 대간종주를 끝마치게 했을 것입니다.

옛 선인들은 산을 오르는 것은 만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했습니다.

채근담에 ‘사람들이 유자서(有字書)는 읽을 줄 알고, 무자서(無字書)는 읽을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을 책을 끼고 살았던 선비들도 자연이 베푸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은 만권의 책보다도 나았으니, 명산을 찾아 길 떠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길을 뜻하는 도(道)가 사람이 살아가는 올바른 길(道)을 의미하는 자구(字句)로 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그 길을 걸어가서 이루는 것이 도(道)가 되고, 경(經)이 된다 했습니다.

우리는 그 대간 길 1800여리를 고집스레 꼬박 걸어갔습니다. 어찌 보면 발로 쓴 경전(踏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끝으로 대간산행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역사적으로도 거대한 인류 문명이나 깨달음(覺)은 모두 길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수하좌(樹下座)를 하며 운수행각(雲水行脚)을 떠나던 부처님도, 길 없는 광야에서 떠돌았던 예수님의 행적도 그러했고, 희랍문명도 알고 보면 소요학파(逍遙學派)가 길에서 이뤄낸 역사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이유로 대간 길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요즘과 같은 세태 속에서 그런 화두(話頭)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言敢生心), 우공이산(遇公移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省察)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대간종주 산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늘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이 희망이기도 하지만, 막상 이루고 나면 교만해지기 쉽고,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백두대간 종주산행...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답니다.

하루에도 많게는 20여 차례 산(峰)을 오르내리다 보면, 때론 마지막 남은 땀 한 방울까지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던 산이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답니다. ‘내가 두 번 다시 오나 봐라’... 그러나 산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거친 숨소리와 비오듯 떨어지는 땀방울이 아니라, 끝없는 인내와 겸손을 익히라 하고, 마지막까지 떨치지 못한 교만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산은 그렇게 우리 곁에서 영원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후원 해 주시고 산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조관형 수필가·동해펄프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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