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 중앙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고향이 생각나는 절기다. 누가 고향을 생각하지 않으랴. 연말연시가 되면 더욱 간절하다. 한 두 해가 아니요 수십 년을 떠나 있어도 그리움은 변함이 없다. 문수봉과 무룡산을 바라 보고, 태화강 줄기를 떠올리며 십리 넘어 뻗어난 대숲을 회상함도 귀소본능의 발로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우시산(于尸山)이다. 조금 생소하게 들릴 지도 모른다. 울산의 옛 이름이다. 이 우시산은 삼국시대 이전에는 진한에 속한 땅이었다. 진한은 한반도의 남동쪽에 있었던 나라다. 이 진한은 12개의 작은 부족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우시산국이다. 이 우시산국이 바로 지금의 울산이다. ‘우시산’의 ‘시(尸)’가 신라 표기인 향찰에서 ‘ㄹ’을 나타낸다. 그래서 ‘우시산’이 ‘울뫼’가 되고 ‘울뫼’가 ‘울산’이 된 것이다. ‘산’의 고어가 ‘뫼’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울산은 태백의 줄기가 한반도의 척추처럼 뻗어 내리다가 용트림을 하며 뭉친 곳이다. 무룡산에서 구비치다가 문수봉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 형상이다. 태화강이 그 사이를 흐르고 삼산들이 풍부한 곡창 역할을 하고 있다. 울산은 동천강을 비롯한 많은 지류들이 생명수처럼, 혈맥처럼 태화강으로 흘러들고 있기도 하다.

태화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운 설화가 있음을 짐작하게 하거니와 태화루, 태화진, 태화사, 태화동 등이 모두 신라 자장율사와 관련이 깊다. 이 강을 끼고 달동이 있는데 이 부근은 예로부터 왕이 날 곳이라 하여 풍수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오늘날도 울산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그 가까이 학성이 있어 학과 관련된 전설도 흥미롭다. 무룡산엔 명당이 있다하여 많은 이들이 명당을 찾아 나서기도 했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고 몰래 쓴 산소들을 색출하기도 했다.

울산은 처용설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헌강왕이 울산 바닷가에 나들이 왔다가 처용을 얻어 서울 경주로 간 이야기는 한국인이면 모두가 아는 설화다. 울산은 이처럼 풍성한 전통 문화를 지닌 곳이다.

울산의 산 중에 문수산은 울산을 상징하리만치 유명하다. 이름만 봐도 불교 냄새가 난다. 물론 이 산 이름도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에서 나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문수봉 또는 문수산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조선조 세조 임금이 몸에 부스럼이 심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전국의 약수터를 방문하는 중이었다. 오대산 상원사 계곡에 이르렀다. 물이 하도 시원하여 홀로 등물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어린 아이 하나가 나오더니 왕의 등을 밀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도 시원하여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그 시리던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왕이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너 아무에게도 등을 밀어 준 사람이 임금이라고 하지 말아라. 임금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큰 벌을 받느니라 했다. 아이도 한마디 했다. 임금님도 아무에게나 말하시면 아니 됩니다.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 줬다고. 그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문수산은 이런 설화를 지닌 산이다. 새 해 우리 울산에서 문수봉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든 액운이 사라질 것이다. 처용의 벽사진경도 그렇다. 모든 삿된 것은 물러가고 큰 복을 받으라는 것이 처용의 주제 벽사진경이다.

마침 이런 내용을 잘 정리한 ‘강길부의 울산 땅이름 이야기’가 발간되었다. 대단한 역작이다. 새 해 아침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 울산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해가 바뀌면 고향이 그리워 진다.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과 같은 곳이다.

김경수 중앙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