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문 전 강남교육장
한동안 일본에서는 ‘나리타의 이별’이 대유행했다. 50·60대의 부부가 퇴직금으로 막내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나리타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보낸 뒤 서로 남남으로 갈라선다는 내용이다. 10년 전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이 같은 황혼이혼 바람이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다. 30~40년 같이 살다 이혼하는 부부가 최근 7년 사이 10배 이상 늘고 있다.

‘부부란 쇠사슬에 한데 묶인 죄수와 같다’는 말이 있다. 평생 서로 보조를 맞추며 걸어야 하는 동반자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 쇠사슬도 요즘 쉽게 끊어지고 있다. ‘님’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도 있지만 하루 평균 341쌍이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서로 제 갈 길을 간다. ‘자식들 봐서 참는다’는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성격 차이로 헤어진 60이 넘은 어느 부부의 이혼 얘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혼한 그날 저녁 부부가 이혼수속에 수고가 많았던 변호사와 함께 술을 한 잔 하게 됐다. 주문한 안주는 통닭이었다. 통닭이 상위에 놓여지자 남편은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 먼저 아내에게 권했다. 동석한 변호사가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 부부가 어쩌면 화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내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마구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지난 30년간 항상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더니 이혼하는 날까지도…. 나는 닭다리를 좋아한단 말이야. 어느 부위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이 당신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야.”

화가 난 아내에게 남편은 말했다.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30년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 준건데. 이혼하는 날까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통닭 날개 부위 때문에 화가 난 노부부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 집으로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정말 나는 아내에게 한 번도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 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 하겠구나 생각했지. 내가 너무 잘못한 것이 많았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사과라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남편에게서 온 전화라 받지 않았다. 또 전화가 걸려왔기에 배터리까지 뽑아 버렸다.

아내도 다음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30년간 남편이 날개 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먹지 않고 나에게 먼저 주었는데도 그 마음은 모르고.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아내도 남편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풀어주려고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119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달려간 아내는 휴대전화를 꼭 잡고 죽어 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휴대전화에는 아내에게 보내려고 써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용서해…’

여태껏 우리는 이 부부처럼 서로가 한 번도 어느 부위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지 않고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내가 좋아하면 상대도 좋아 하겠구나 생각하면서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참다운 부부애란 가난이나 시련이나 환란이 온다할 지라도 파괴할 수 없는 큰 힘을 갖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데 세월은 다 흘러가고 뒤늦게 서로 사랑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부부가 이 노부부처럼 늘어가고 있다.

사막의 모래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이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매일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는 일이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다. 행복한 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격려하고 인내하지만 불행한 부부는 서로를 공격하고 무시한다. 서로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가정의 행복을 앗아간다. ‘칼로 물 베기’란 부부싸움도 자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직장에 올인하면서 아내와의 일대 일 파트너십을 맺는 데는 너무 미숙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취미생활 공유, 운동, 집안 일 분담 등 공동훈련을 통해 친밀화 단계를 거치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인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황혼의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된다.

윤정문 전 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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