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정책이 새 정권 출범 전에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만큼 시급한 사안인가. 서민 경제 문제보다 재벌정책이 더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현안일까? 현 정부는 며칠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언급한 바 있는 재벌 그룹 경영의 투명성 제고, 재무구조 개선, 변칙 상속.증여 방지 등을 추진해왔다.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엇갈릴 수밖에 없는 만큼 논외로 하더라도 재벌 그룹의 구조조정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재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의가 없을 것이다.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비춰 보아서도 재벌의 구조조정은 지속돼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작업은 경제정의 구현과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경제분야에서, 김영삼 정부가 김대중 정부에게 넘겨준 가장 큰 짐이 환란이었다면 김대중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게 넘겨줄 가장 큰 짐은 26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와 430조원에 이르는 가계 빚 문제가 될 것이다. 공적자금 상환 부담을 포함한 적자 재정도 적지 않은 짐이다. 뭉뚱그려 말하면, 환란 전의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이 몇 년 사이 가계와 국가 재정으로 전가된 셈이다. 새 정부는 지금부터 모든 역량을 기울여 부실 가계와 적자 재정 치유에 매달려야 한다. 적자 재정은 정부 자체의 문제라고 치더라도 신용불량자와 부실 가계 문제는 많은 국민이 고통 받는 문제이니만큼 당장 정부와 온 국민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시급한 문제다.

 결코 재벌 개혁을 늦추자는 주장이 아니다. 지난 2년여 재벌 개혁 문제가 떠오를 때마다 우리는 일관되게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쪽에 서왔고 지금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힌다. 단지 수백만 명의 국민이 매일 매일을 암담함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먼저 눈을 돌리자는 말이다. 인수위 관계자의 재벌정책 발언이 어떤 비중을 갖고 나왔는지, 또 그 발언이 각 언론에 의해 왜 급속히 확산됐는지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앞으로는 정책의 우선 순위가 신용불량 상태인 내 가족과 내 이웃에 중점적으로 모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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