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시 울산 - (1)프롤로그

▲ 자전거는 ‘타는 것’이라기 보다 새로운 ‘걷는 방식’이다. 자전거로 걸어가면 세상이 내 몸으로 들어오고 빠져 나간다.
교통체증·주차난 등 고질화 된 출·퇴근길 스트레스

운동량 부족은 러닝머신으로 달래야 하는 현대사회

페달밟기로 건강·오염·교통난 3대 부작용 다스려야

1970년대와 1980년대, 지금의 40~50대라면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시골마을에 자가용 한 대 구경하기 힘들었던 당시 자전거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자 화물운송 수단이었다. 십리가 넘는 학굣길을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떼지어 자전거를 타고 휑하니 달려가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자전거는 또 아버지에게는 두루마기 걸쳐입고 윗동네, 아랫동네 문상갈 때 타고다니던 훌륭한 자가용이었다. 낡은 고동색 가방을 운전대에 걸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던 우체부 아저씨, 한 말짜리 플래스틱 술통을 몇개씩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채 곡예하듯 배달 다니던 술도가 형님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화물차였다.

그런 자전거가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들어서면서 오토바이와 자가용에 밀려 화려했던 추억의 책장을 덮었다.

도시 곳곳에 신작로가 쭉쭉 뻗어나가고 그 위로 자가용과 집채만한 화물차들이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시골마을에도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오면서 자전거는 못사는 사람들이나 타고다니는 가난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자전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싶었다.

그런데 요즘 자전거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가난의 상징이 아니라 그 동안 승용차가 낳은 모든 부작용을 일거에 해소해 줄 수 있는 현대사회의 만병통치약으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건강증진과 환경개선, 그리고 교통난 해소다. 본보는 자전거가 울산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울산은 자전거 시설을 어떻게 확충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시리즈를 마련한다.

◇자전거로 걷는다

‘당신의 다리는 둥글게 굴러간다/허리에서 엉덩이로 무릎으로 발로 페달로 바퀴로/길에 이어진 다리가 굴러간다…’

시인 김기택씨가 작가 김훈씨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고 쓴 시의 일부분이다.

자전거는 ‘탄다’고 표현하지만 기실은 타는 것이 아니다. 탄다는 표현은 제 힘을 쓰지 않고 남의 힘에 의지해 이동하는 것을 말하지만 자전거는 사람의 힘이 없으면 절대로 나아갈 수 없다.

엔진이 없는 자전거는 사람이 엔진인 셈이다. 그래서 두 콧구멍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는 심장으로는 펑펑 쏟는 피를 내보낸다. 다리에 선 밧줄같은 힘줄은 앞 뒤 바퀴의 살이 되고, 근육같은 타이어는 마침내 땅을 박차고 나간다. 이 쯤 되면 자전거와 사람은 둘이 아니다. ‘자전거를 탄다’고 하기 보다는 ‘자전거로 걷는다’고 하는 것이 맞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우마차로·소로·임도·등산로 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김훈의 자전거 예찬이다.

자가용에 비해 자전거는 느리다. 그러나 두 바퀴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문짝도, 앞유리도, 백미러도 없는 한 조각 안장 위로는 천지간의 만물이 거침없이 통과한다. ‘느림의 미학’은 두 바퀴 위의 안장에 있다.

▲ 자전거는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대표적인 녹색 교통수단이다.
◇쾌도난마 자전거

울산 도심에서 4차선 도로를 뚫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1m에 수천만원이 든다. 금싸라기 같은 땅값에다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자재값 등으로 인해 100m 남짓한 도로 한 구간을 개설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차량 때문에 길을 내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주차장은 항상 부족하고, 불법주차 스티커는 날개 돋친 듯 발부된다. 돌아서면 차량 관련 세금쪽지와 보험료 청구서가 현관문을 도배하고 재수없는 날은 견인까지 돼 하루 일과를 망치기 일쑤다. 여기다 기름값은 또 얼마인가.

뿐만 아니다. 출근길마다 체증은 아침부터 사람을 지치게 하고 수시로 일어나는 접촉사고는 사람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바리’로 만들어 버린다. 사망 교통사고라도 나면 한 순간에 알거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그들은 저녁이 되면 운동량이 부족하다며 러닝머신에 목을 맨다. 그들은 자가용을 마치 없어서는 안될 ‘아내’처럼 맹목적으로 씻고 닦고 챙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때가 왔다. 자가용과 과감히 이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자전거는 자가용 때문에 얽히고 섥힌 난마를 한 칼에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 중의 대안이다. 그래서 전국의 지자체가 지금 자전거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녹색성장의 대표주자 자전거

자전거에는 매연이 없다. 엄청난 양의 아스콘이 들어가는 4차로, 8차로 도로도 필요없다. 다만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평평한 좁은 길이면 된다.

이명박 정부가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저탄소 녹색성장’의 가장 중요한 항목 중의 하나가 녹색교통수단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 녹색교통수단의 첫 번째가 자전거다.

요즘에는 자전거도 품질이 매우 좋아져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신소재 합금으로 프레임이 가벼워지고 기어와 브레이크 등 동력전달장치의 성능과 품질도 크게 개선됐다. 이런 신상품 자전거는 최근 울산에서도 성행하고 있는 산악자전거 등에 도입돼 갈수록 산업의 볼륨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아직 1.8%에 불과하다. 네델란드는 43%, 독일은 26%, 일본은 25%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에 뒤늦게 자전거법을 제정해 그나마 열심히 따라잡고 있다.

울산은 ‘공업도시’, ‘공해도시’에서 ‘생태도시’로 이제 막 탈바꿈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울산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표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난해 가장 먼저 국제심포지엄을 여는 등 발빠르게 대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도시 울산’이란 이미지 메이킹은 울산이 반드시 창출해 내야 할 울산의 미래 ‘깃발’이다. 이제 자전거는 울산에서도 대세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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