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시를 바라보는 두 시선 - ‘로마의 휴일’과 ‘자전거 도둑’

▲ 로마 콜로세움 내부 전경. 사진=울산대 유명희 교수 제공
로마의 휴일-세기의 요정 오드리 헵번과 함께 경쾌한 관광, 콜로세움·트레비 분수 등 상징적 건물 볼거리

자전거 도둑-‘2차대전 패전 이후 피폐한 로마의 뒷골목 얘기, 꾸미지 않은 도시의 속살 그대로 스크린 옮겨

세상의 삶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한 도시는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에 따라 천의 얼굴로 투영되기도 한다. 유명 관광지의 그림엽서처럼 낭만적인 그 무엇으로만, 혹은 뒷골목의 너저분한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도시는 밝음과 어두움이 서로 중첩되어 있고, 빛의 스펙트럼같이 다양한 성분들이 내재되어 있다.

도시의 양면성은 영화를 통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로마의 휴일’과 이보다 조금 앞에 나온 ‘자전거 도둑’은 유럽의 역사도시 로마를 배경으로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영화 속에 비춰진 로마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비록 동일한 도시에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명되는 도시의 모습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는 것처럼 그 차이가 아득하고 멀기만 하다. 밟고 경쾌한 실내악과 무겁고 장엄한 레퀴엠의 차이라고 할까?

▲ 트레비 분수.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로마 시내를 무대로 러브 스토리를 펼친 ‘로마의 휴일’은 영화적 환상과 착각을 통해서 경쾌하고 상큼하게 낭만적으로 로마를 묘사하고 있다. 반면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Cica)감독의 ‘자전거 도둑’에 비춰진 로마 시내의 모습은 전쟁 후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피폐해진 인간성과 대량 실업, 삶의 고달픈 현실을 무겁고 어두운 흑백의 화면으로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태생 미국인 윌리엄 와일드 감독의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년 작품)은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미국의 유명배우들을 등장시켜 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의 멜로드라마이다. 외부인의 시선(관광객의 시선)으로 로마 시내를 관광하듯 이곳 저곳을 돌며 로마의 아름다운 서정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요정 같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천진난만한 웃음 뒤로 오버랩된 로마 시내의 전경 속에는 어떤 전쟁의 상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배경은 로마를 대표할 만한 상징적인 장소와 건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의 구도심을 굽이돌아 흐르는 테레베 강을 비롯하여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과 트레비 분수, 그리고 스페인 계단과 진실의 입 등 수많은 명승지들을 오드리 헵번과 함께 유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한 환상과 즐거운 일탈을 만끽한다. 이후 영화배경으로 등장했던 이들 장소는 더욱 유명한 명소로 자리 매김한다. 도시와 건축을 상품화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이미 도시건축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1948년 작품)은 전쟁 후 참담한 현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인 주인공이 도둑이 되어가는 과정을 내부인의 시선(일상을 향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인간극장이다. 사회 속에서 절망한 가장과 그를 자전거 도둑으로 만든 전후 이탈리아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로마는 도시의 찬란했던 역사나 전통과는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오드리 헵번이 보여줬던 로마의 관광 명소나 역사적인 유적지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 사실적인 화면을 담기 위해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 배우(금속노동자/신문배달부)를 기용했다거나, 전쟁 중에 무너진 로마 시내의 전경을 그대로 영화 촬영지로 활용하고, 로마의 뒷골목과 꾸미지 않는 장소에서의 촬영 등 당시의 시대적 현실감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20세기 초 파시즘의 출현과 무솔리니의 등장과 몰락,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참전과 패배 등 일련의 혼란했던 이탈리아의 근·현대사를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1940년대 후반, 전쟁후의 실직의 고통과 빈곤 등 로마의 상황을 특별한 부연 설명 없이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흔히 말하기를 영화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이라고도 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꿈을 꾸기도 하고, 그 꿈을 실현시키는 환상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 도둑’과 같은 사실적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까닭모를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어쩌면 더 못할 수 있는, 그래서 인간본성의 심연에 감추어진 무언가를 드러냄으로써 말할 수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두 영화를 통해서 도시는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외부자의 시선이든 내부로 향한 시선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라는 인간문화의 그릇은 대기만성의 지혜와 인내 그리고 여유를 요구한다. 지금의 로마는 세계 2차 대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합리주의라는 현대건축의 큰 주류를 형성하였고, 오늘날 현대건축을 받쳐주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건축을 주도하는 이론가나 건축가들 중에서 로마라는 도시가 주는 교훈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 도시의 역사성과 그 맥락들이 목전의 이익에 무참히 사라지는 현실에서 볼 때 많은 반성과 분발이 요구된다. 도시의 역사성을 자본주의적 시장논리로만 다루려할 때 역사나 전통은 부동산가치의 깊은 그림자 뒤로 사라지게 된다. 도시계획가 에드먼드 베이콘이 지적한바와 같이 도시디자인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인간의 위대한 행위의지(act of will) 혹은 노력(effort)과 비전(vision)이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위대한 도시는 대개가 장구한 시대정신이 축적된 역사도시들이다. 그래서 도시는 진화되기 보다는 창조되는 것이며, 인간의 도시에 대한 열정과 열망, 충성 그리고 도시민의 소속감과 애정, 도시에 대한 자존심이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최근 전국적으로 도시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의 겉모습을 경쟁적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조급하게 뭔

▲ 김정민 울산대(건축대학) 교수

가를 새롭게 만들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더욱 세심히 관찰하고 앞선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역사에 걸 맞는 이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정민 울산대(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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