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의 하프돔(Half Dome)에 오르다

▲ 높이 1444m의 거대한 화강암 수직 암벽을 사람들이 마치 개미처럼 기어오르고 있다.
산행 둘째날 곰과의 식량 쟁탈전으로 시작돼

빙하 침식으로 이뤄진 수천개 바위·계곡 절경

단일 화강암 ‘하프돔’ 정상 오르면 전율 느껴져

“곰이다! 곰 곰.”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신 새벽. 황혜지씨 비명에 모두 일어나 헤드램프를 켰다. 철제로 만든 대형 곰 박스에서 검은 곰이 어둠속에 서성인다. 식량 냄새를 맡은 것이다. 미련이 남은 곰을 쫓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곳은 곰의 출몰이 잦은 곳이므로 음식은 곰통에 넣어 보관해야 하고, 휴대용 곰통은 운행할 때 지참해야 한다. 만약 곰통을 소지하지 않아 식량을 털렸을 땐, 말 그대로 재주는 사람이 부리고 식량은 곰이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주를 포기하게 만드는 동물은 곰뿐이 아니다. 마모트와 다람쥐 역시 호시탐탐 식량을 노린다. 종주를 성공하려면 무조건 식량을 사수해야 한다. 막영지에서 백피트 이상 떨어진 곳에 곰통을 놓으라는 건 혹 식량 때문에 곰과 전투를 벌일까 우려한 당국의 경고 사항이다.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에 음식이 있다면 곰 앞발은 흉기가 된다. 한방에 두꺼운 유리를 깨고 식량을 먹는다. 따라서 존 뮤어 트레일은 식량과의 싸움이다. 우리가 먹어 치울 식량은 대략 200끼니. 음식은 무게도 그렇지만 부피 역시 커서 다 지고 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각자 지참한 곰통(4kg 정도) 외에 예비로 하나 더 추가했는데도 준비한 식량을 다 넣을 수 없었다.


배고픈 종주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곰과의 지혜 싸움에서 인간이 질 수는 없다. 곰통에 넣지 않으면 100% 습격을 받는다는 조언에 따라 곰을 피하는 방안을 강구해 놓았다. 출발지로 오는 길에 몇 군데 식량을 데포 시켜 놓았다. 스키장으로 유명한 맴모스 뒤편 레드매도우(Reds Meadow) 리조트까지 일부러 가서 유일한 리조트 가게에 한 뭉치, 투알롬 매도우(Tuolumne Meadow) 레인져 사무실 앞 철제 곰 박스에 한 뭉치. 그리고 마지막은 이미 존 뮤어 랜치(John Muir Ranch)로 소포를 이용해 두 뭉치 식량을 부쳐 놓았다. 그곳은 트레일 중간 지점이었다.

곰 소동으로 일어난 김에 출발 준비를 했다. 힘주어 등산화 끈을 조여 매었다.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드디어 JMT 첫 발을 뗀다. 드디어 대장정의 출발이다. 요세미티의 공식적 출발지 해발 1500m인 ‘해피아일랜드’를 지났다. 앞으로 17일 간 수십 개의 고개를 넘을 것이다. 신새벽 세코이아 숲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놀라지도 않고, 검은 눈으로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첫 걸음부터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우리가 헤쳐 가야 할 트레일은 캘리포니아 주내의 몇 개의 국립공원과 국유림을 관통하고 있다. 남쪽 시작 지점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지나 킹스캐년 국립공원, 세코이아 국립공원, 인요 국유림 공원이 그곳이다. 천연의 자연 그대로 보존 된 이곳은 따라서 야생 곰과 사슴이 뛰노는 동물의 왕국이기도 하다.

표지판에 새겨진 존 뮤어 트레일 표지판이 새삼스럽다. 버넬 폭포를 바라보며 네바다 폭포 갈림 길에 도착했다. 네바다의 치마폭 같은 물줄기가 굉음을 내고 떨어진다. 머세드 강이 모인 병목현상으로 폭포를 이루니 당연한 일이다. 뒤쪽으로 통째 하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하프돔과 그 위성봉이 우뚝하다. 세코이아 우람한 나무들 사이에서 지저귀는 청량한 새소리를 들으며, 아무 곳이나 찍어도 이 풍경은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도를 높이며 요세미티 계곡이 눈 아래로 보이기 시작했다. 눈 아래 세상은 온통 바위 천지다. 어떻게 이렇게 단단한 바위가 패여 계곡이 되었을까. 비밀은 빙하다. 우리가 가는 트레일 이름의 주인공 존 뮤어는, 이 계곡이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처음으로 규명한 빙하 학자이기도 했다. 약 1백만년 전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화강암 절벽과 U자형의 계곡이 형성되고 이어, 1만여년 전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수천 개가 넘는 호수, 폭포, 계곡 등이 만들어졌다. 빙하가 만든 기암절벽을 비롯한 절경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연간 3백만에 이르며,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암벽이 많아 세계의 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1890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우리말로는 ‘대장 바위’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엘캐피탄(El Capitan)이 다시 보였다. 007영화에서 낙하산으로 뛰어 내린 이 바위벽은 어디서나 단연 눈에 띈다. 높이 1000m의 거대한 화강암이 수직으로 솟아 주변의 벽들을 압도하니 사람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지상 최대의 단일 화강암이라는 말은, 맞은편에 서있는 반쪽 바가지를 닮은 하프돔(Half Dome)을 보며 의심이 든다. 뿌리부터 정상까지 매끈한 하프돔 역시 단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졌다. 그 외에도 계곡 남서쪽에 전망대처럼 우뚝 솟은 보초 바위(Sentinel Rock), 성당 종탑을 연상시키는 종탑 바위(Cathedral Rocks). 요세미티는 역시 바위 세상이었다.

바가지를 칼로 딱- 쪼개 놓은 하프돔 절개 면은 클라이밍 대상이지만, 둥근 면은 두 줄의 쇠줄을 박아 놓아 백운대처럼 일반인도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원래 존 뮤어 트레일은 그 정상을 비껴가지만 왕복 3km 남짓한 그곳의 풍경을 놓칠 수 없었다. 수복 한계선을 넘어 선 탓일까, 아니면 화강암이라 세코이아 나무가 뿌리를 못 내려 그런 걸까. 그늘을 벗어난 노출된 몸이 태양의 폭력에 속수무책이다. 물론 썬블록을 피에로처럼 허옇게 발랐지만 별 효과가 없다.

화강암을 기어오르느라 몹시 더웠지만 미친놈처럼 올랐다. 하프돔 가는 길은 휴가철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엄청 몰려 트래픽을 이루고 있다. 이미 고도가 3000m를 넘어 고소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괴로워했다. 다리쉼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이 땡볕에 닭병 걸린 사람처럼 흐물거리며 걷는 사람들 모두 산에 미친 사람들이다. 하긴 그들처럼 하프돔으로 끝내지 않을 우리는, 그들 보다 더 미친 것인지 모른다.

▲ 신영철(산악인·소설가)

하프돔 정상은 운동장처럼 넓었다. 직벽 앞에 서니 고도감에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곳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다시 트레일로 돌아와 길을 재촉했다. 원래 모든 첫 경험은 처음이 고통스럽다. 고소에 적응해 갈 몸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몇 개의 고개를 넘어 어스름에 첫 야영자리를 잡았다. 단언 하건데 존 뮤어 트레일에선 어느 곳에 천막을 치더라도 그대가 평생 꿈꾸어 오던 그런 야영 장소다.

글=신영철(산악인·소설가) 사진=윤재일(재미교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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