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의 다문화가정은...-(10) 결혼이민자여성, 시로 말하다!

▲ 울산여성의전화는 올 한해 다문화가정 결혼이민자여성을 대상으로 시낭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구경영 시낭송가가 정확히 발음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중구 성남동 울산여성의전화(회장 전성신) 2층 해오름 교육관에서 아름다운 시 읊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울산에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이다.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어가 나왔는지 중간중간 더듬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읽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결혼이민자여성들이 어떻게 시낭송을 하게 됐을까?

◇시낭송으로 한국어 익힌다

울산여성의전화는 한국여성재단 생명보험 사회공헌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지난 1월부터 10여명의 결혼이민자여성을 대상으로 시낭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한글이 압축된 시문학을 통해 한글의 정확한 발음과 뜻을 이해하고 나아가 좀 더 고급스러운 한글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특히 단순한 한글 배우기를 넘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의 어색한 발음을 교정함으로써 한국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와 함께 시낭송을 하면서 일상의 문제들을 감정이입함으로써 한국 생활의 답답함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이유도 있다.

울산여성의전화는 이같은 목적을 갖고 ‘시, 낭송을 통해 만나는 행복한 일상’을 주제로 시낭송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이론 및 시낭송 실전 연습을 실시하고 오는 5월과 7월에는 시낭송회도 가질 계획이다.

울산여성의전화 이정희 사무국장은 “결혼이민자여성을 대상으로 동화구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시낭송 프로그램은 아마 전국 최초일 것”이라며 “시낭송교실이 끝난 이후에는 자조모임 등을 형성해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여성의전화 시낭송교실 강사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구경영 시낭송가가 나섰다.

구 시낭송가는 지난해 울산에서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지도해 멋진 시낭송회를 펼친 경험을 갖고 있다.

사실 결혼이민자여성들에게 시낭송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공한 사람도 바로 구 시낭송가이다.

그는 “몇 년전 결혼이민자여성들이 시낭송을 하면 어떨까, 외국인들의 입에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시가 흘러나오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이 들어 회원으로 활동한 울산여성의전화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결혼이민자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한국어교실이 전무했고 또 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터라 시낭송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울산여성의전화에서 지난해 한국여성재단 생명보험 사회공헌위원회에 프로그램을 공모한 것이 선정되면서 시낭송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됐다.

구 시낭송가는 “솔직히 결혼이민자여성들에게 시낭송을 가르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며 “한국인들은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시 내용도 충분히 설명가능한데 수업을 듣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정도도 다 달라서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몇 차례 수업을 가진 구 시낭송가는 중·고급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가진 결혼이민자여성이면 시낭송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초급은 발음 하나하나를 다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구 시낭송가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이 시낭송을 통해 반복적인 발음 연습으로 더욱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초·중·고급 모두에게 도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시낭송가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의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것처럼 사진이나 비디오 등 시청각자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시도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고 비교적 쉬운 낱말로 된 것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시낭송으로 한국생활 자신감 쑥쑥

구 시낭송가는 시를 가르치기 전 가나다라 등 자음과 모음 하나하나의 발음부터 연습한다.

“‘며’는 ‘미’와 ‘어’를 빨리 발음하면 돼요, 따라해보세요 ‘며’!”

구 시낭송가의 설명에 결혼이민자여성들이 한 목소리로 ‘며’를 외친다. 발음이 잘 되지 않는 한 결혼이민자여성은 구 시낭송가의 집중 지도를 받기도 했다. 마침내 ‘며’ 발음을 해낸 결혼이민자여성의 얼굴에 해냈다는 웃음이 번진다.

시낭송교실에서는 구 시낭송가 말고도 결혼이민자여성들의 수업을 돕는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한다. 이들은 한글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결혼이민자여성들의 발음 지도와 단어 설명 등 보조업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발음 연습이 끝나고 지난 시간에 배운 정두리 작 ‘떡볶이’라는 시를 복습했다.

“달콤하고 조금 매콤하고/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그래도 호호거리며 먹고 싶어.

벌써 입 속에 침이 고이는걸/‘맛있다’ 소리까지 함께 삼키면서/단짝끼리 오순도순 함께 먹고 싶어.”

한 사람씩 시를 읽어본 뒤 구 시낭송가가 한국 음식 중 달콤하고 매콤한 것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결혼이민자여성들이 매운탕, 설탕 등을 이야기했다.

구 시낭송가는 이같은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읽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까지 알 수 있도록 한다.

구 시낭송가는 “시낭송은 한국어 교육을 심화시킨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발음과 함께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시낭송의 기본인 감정 및 분위기 전달을 위한 느낌 살리기에 큰 도움이 된다”며 “특히 지속적인 발음 연습은 결혼이민자여성들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감을 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발음과 느낌을 살려 말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반복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구 시낭송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시낭송 CD를 제작해 결혼이민자여성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구 시낭송가는 결혼이민자여성들이 자연스러운 시낭송을 펼치기까지 최소 1년에서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낭송을 연습하고 또 시낭송회를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과정에서 결혼이민자여성들이 한국 생활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수업을 마친 뒤 베트남이 고향인 양월계(여·66)씨는 “원래 베트남이나 중국시 등을 좋아해서 시낭송을 배우고 싶었다”며 “한국에 산지 오래 됐는데도 잘 몰랐던 부분이 많은데 이번에 시낭송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홍은행기자 redbank@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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