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전차의 명맥을 잇다
■지난해 5년 만의 첫 결실…올해도 내달 20일 곡우 전후해 수확
2년 정도 더 자라야 차밭 면모…자투리공간 과실수·허브 눈길■
울산은 ‘차 재배 북방한계선’…고서엔 다전·왕실 진상 기록도■
울산시교육청에서 삼호교 방향으로 북부순환도로를 가다보면 오른쪽 도로변에 오래된 ‘난곡산장’ 건물이 있다. 대나무에 가려져 있어 신경 써서 살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 건물 뒤쪽으로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1만여평 규모의 차밭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울산발전연구원 서근태(71) 원장이 5년여에 걸쳐 땀으로 완성한 차밭이다. 손바닥만한 다랭이논도 아니고 산봉우리를 두 개나 낀 너른 밭인데도 아는 이는 거의없다. 도심이 지척이지만, 일부러 찾아 헤매야만 비로소 눈에 띄는 옴폭한 공간에 꼭꼭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차밭이 들어서게된 사연도 재밌다. 5대 째 전해 내려온 야산이 십수년전 연이은 산불에 그만 민둥산이 돼버렸다. 나무가 사라진 산등성이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심을 많이 했다. 애초 매실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는데 토질이 맞지 않았는지 별 재미를 못보았다. 산불이 진 자리라서 고사리만 무성하게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다도에 관심이 많았던 서 원장이 몹쓸 땅을 살릴 비책으로 차밭을 생각해냈다. 시범 삼아 우리나라와 기후가 비슷한 중국 소주의 용정 차씨를 구했고, 산비탈을 개간한 뒤 해마다 조금씩 파종을 했다.
처음에는 차밭 규모가 이처럼 커 질줄 몰랐다. 틈틈이 차나무와 차씨를 구해 심고, 뿌리고, 키우기를 거듭했다. 조금씩 늘어가던 차나무는 그렇게 몇 해가 흐르는 동안 두 개의 산봉우리와 비탈을 모두 차밭으로 바꾸어 놓았다. 늘어나는 것은 차나무 뿐만이 아니었다. 자두, 블루베리, 살구 등 40~50종에 이르는 과실수들이 가장자리와 틈새를 장악했다. 계란 크기만한 대추가 열리는 개량종 나무에다 ‘비타민’ ‘칼슘’ 등 이름도 낯선 신품종 과일나무까지 등장했다. 이 뿐이 아니다. 두엄을 옮기는 고갯길 옆에는 20여 종이 넘는 허브가 자라고, 비탈을 타고 내리는 개울 위로는 키위와 같은 덩쿨이 자라도록 대나무 버팀목이 세워졌다.그러기를 5년. 드디어 지난 해 첫 수확의 재미를 누렸다. 수년 간 주말마다 땅을 일군 값진 결실이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 지, 지난 해 처음 재배한 찻잎은 전문가의 손에 맡겨 덖어졌고, 가까운 지인들은 조금씩 그 기쁨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올해는 지난 해보다 더 많은 찻잎을 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지마다 새파랗게 올라온 순두는 조금 더 자란 뒤 내달 20일 곡우를 전후로 수확돼 순하면서도 향긋한 ‘울산차’로 변모할 예정이다.
차밭에 대한 서 원장의 애착은 몇몇 고서를 뒤지며 연구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차문화의 시초가 바로 이 곳, 울산이라고 추론하게 됐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울산에서 재배된 작설차가 왕실 진상품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보다 앞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서기 828년 흥덕왕때 당 회환사였던 대렴이 차와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시초는 그보다 앞선다. 흥덕왕대에 이르러 귀족가문을 중심으로 차가 성행했지만, 기실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앞선 선덕여왕 때라고 아울러 기록해 놓았다.
전남 선암사 지허스님은 선덕여왕 시절 자장율사가 차씨를 가져와 울산과 양산 등지에 심고 다전을 일구었다고도 했다. 왕족이 살던 경주에 차를 심지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기후여건 때문이다. 울산은 경주와 가장 가까운 고을이기도 하지만 차재배지의 북방한계선이었던 것. 언양의 다개리, 범서의 다전 등 울산 곳곳에 차와 관련된 지명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울산과 차와의 역사적인 의미 못지않게 서 원장은 녹차밭이 산사태를 방지하는 데도 톡톡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알려주었다. 차나무의 뿌리는 어느 나무보다 더 깊게 내려간다. 땅 위로 자란 나무의 키보다 1.5배에서 3배까지 곧게 아래로 뻗어내린다. 고랑마다 촘촘히 자라는 차나무 뿌리는 땅 아래 깊은 곳에서 서로 얼키고 설켜 땅을 단단하게 부여잡는 구실을 한다. 뿌리는 깨끗한 수분과 오염되지않은 무기질의 지력을 빨아올리고, 그 기운은 차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된다는 것.
서 원장은 “2년여만 더 지나면 차나무가 더욱 무성하게 자랄테고, 흡사 보성이나 하동 등 남도의 차밭과 비슷한 풍경을 연출하게 될 것”이라며 “운곡(雲谷)이라는 주변 지명처럼 새벽녘 안개가 내려앉을 때마다 그 풍경에 감탄하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곳 차밭을 계기로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아져 울산의 차가 다시금 부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글=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