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도매시장 ‘100배 즐기기’
수산물 소매동 횟집·초장집 성업
활어·장어구이·조개탕·고래고기
식사도 하고 기분좋게 술도 한잔
색다른 분위기 저렴한 가격 ‘OK’

흔히 농수산물도매시장하면 농수산물 도매가 이뤄지거나,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장 보는 곳 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수산물소매동을 잘 활용하면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입맛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자, 술 한 잔 하기에 그만인 술집이다. 특히 제철을 만난 도다리를 맛보기에 딱이다. ‘회는 바닷가에서’라는 고정관념은 접어둬도 좋다. 싱싱한 도다리 한 점을 입에 넣은 순간, 바다도 입안으로 들어온다. 눈앞에 바다가 없다는 아쉬움은 금세 사라진다.

■ 수산물 소매동에 식당있다

직장인 장진우(43)씨는 지난 18일 점심시간에 동료 3명과 함께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찾았다. 큰 TV가 걸린 식당에 자리잡고 한·일전 야구경기나 즐기려 했지만, 동료들에 이끌려 시장으로 향했다.

바다장어 구이를 시키고 초장집에 앉았다. 잘 다듬어진 예쁜 색깔의 멍게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매콤한 바다장어를 먹고 공기밥까지 볶아 먹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소주도 한 병 비웠다.


매운 입 달래다보니 한시간이 후딱 지났다. 계산을 요구했더니, ‘4만원’을 달란다. 4명이 배터지게(?) 먹은 것 치고는 너무 저렴하지 않은가. 장씨는 반드시 또 오겠노라고 약속한 뒤, 시장을 나섰다.

장씨는 “농수산물시장에 이런 맛과 재미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아줌마들의 인정이 구수하고, 옹기종기 붙어 앉아 먹을 때는 이국적인 느낌도 들더라”고 말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은 거대한 식당이자 술집이다. 시장에는 각양각색의 메뉴가 대기하고 있다.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일단 20여곳에 달하는 횟집이 좋다. 횟감을 주문한 뒤 초장집에 앉으면 된다. 조개구이나 조개탕도 인기 메뉴다.

시장에서는 고래고기도 즐길 수 있다. 6~7집이 영업중이다. 시중 고래고기 전문점에서 10만원을 줘야 먹는 고기를, 시장에서는 3~4만원에 맛볼 수 있다. 육질이 좋아 서울에서 택배로 고기를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이 곳에서는 육고기도 먹을 수 있다. 소매동 내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해 초장집에서 구워 먹으면 된다. 한 자리에서 회와 삼겹살을 모두 맛보고 가는 손님도 많다.

세상사는 얘기하다보면 주로 세상 한탄이다. 실컷 울분을 토하고 자리를 일어서려 하면, 초장집 아줌마가

굳이 커피를 끓여 준단다. 자판기 버튼 눌러 뽑는 커피가 아니라, 찌그러진 주전자로 물을 끓여 직접 타준다. 머쓱하게 잠시 기다려야 하지만, 아줌마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전혀 지루하지 않다.

■ 생동하는 만물의 으뜸 ‘봄 도다리’

미식가들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오로지 도다리다. 도다리는 산란기가 끝나고 살이 차오르는 봄철에 맛이 좋으며, 특히 3월 말에서 4월에는 회로 먹어야 제 맛이다.

성인병 예방에 좋은 고도불포화지방산과 아미노산이 풍부하다고 하지만, 복잡하게 따질 것 없다. 그냥 맛이 최고다. 말과 글로 설명하기 힘든 봄이 입안에서 혀와 섞인다. 아무래도 봄과 도다리는 ‘환상의 커플’이다.

‘가을 전어, 봄 도다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맛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겠다. 도다리는 뼈째 얇게 썰거나, 포를 떠서 먹는다. 초고추장이나 간장도 좋지만, 된장이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성장기간이 3~4년에 달해 양식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자연산이다. 하지만 봄철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가짜 도다리도 등장한다. 인기 있는 ‘세꼬시’는 어린 넙치(광어)일 가능성도 있다. 도다리와 광어의 구분이 헷갈릴 수 있다. 구별법은 ‘좌광우도’. 마주봤을 때 눈이 왼쪽에 몰려 있는 것이 광어, 오른쪽에 몰려 있는 것은 도다리다.

시중 횟집에서 도다리는 1㎏에 5만원 가량 한다. 봄철에는 가격이 올라 귀한 대접을 받는다. 때문에 봄이

면 ‘금(金)다리’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당 3만5000원에 도다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초장집에 앉아서 먹으면 1인당 자릿세 3000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그래도 일반 횟집보다는 저렴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나 편안한 자리는 없어도, 도다리 한점 입에 넣고 옆사람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이런저런 얘기 하다보면 시간은 잘도 간다.

글=허광무기자 ajtwls@ksilbo.co.kr
사진=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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