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중심인물인 앤디워홀의 회화작품에는 하나의 물체를 반복해서 연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마리린 먼로〉라는 작품을 예를 들어 보면 실크스크린(판화기법)으로 꼭같은 먼로의 얼굴을 반복해서 찍어낸 것인데 이것을 하이퍼라고도 말하며, 원본에서 멀러짐 즉, 원본은 사라지고 모사가 연속됨을 뜻하는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극사실이라는 말과는 다른 것으로서 과도실재라는 뜻인데, 너무 과도해서 오히려 핀트가 맞지 않고 흐려지는 효과를 내기 일쑤다. 그래서 가까이 가면 무슨 형태인지 분간이 가지 않고 오히려 멀리서 보면 잘 나타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워홀의 〈마리린 먼로〉는 먼로의 생전의 모습을 인용하고 그 원본을 수없이 흐트러지게 함으로써 산업문명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이야기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몇년 전인가 걸프전이 터졌을 때 전세계 사람들은 영화를 감상하듯 TV앞에 모였었다. 영화가 전쟁을 흉내내던 시대는 가고 실제 전쟁이 영화를 닮아 전쟁이라는 원본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철학자는 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은 화분의 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만지며 확인해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모사가죽제품에서부터 무늬목가구, 면같은 나일론천, 수 많은 플라스틱 제품들, 금·은 도금 등 주위에 살펴 보면 수없이 많은 가짜들을 볼 수 있다. 더구나 가짜를 흉내내서 진짜를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을 원본없는 재현이라고 봐야하는데, 만화캐릭터를 모방한 까치머리와 몸에 달라붙는 흰줄무늬 청바지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또 가발을 모방한 빨강머리 노랑머리의 염색머리도 생겼다.

 오늘날 지성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상가 중의 한사람인 쟝 보드리야르는 "기호가 사물을 대체하고 가짜가 실제를 대신하는, 그럼으로써 재현과 실제, 모사와 실물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고 역전되는 사회"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까지 오게된 과정을 살펴보자.

 산업사회가 시작된 것은 서양이 18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라면 한국은 박정희시대부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산업사회의 초기에는 생산자 중심이어서 소비자가 줄을 서서 공산품을 구입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츰 생산품이 많아지면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생산자는 자연히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며 찾아다니는 현상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되면서 광고가 생겼으며 메스미디어를 통한 광고의 홍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모델이란 말은 엄격히 따지면 가짜라는 뜻이다. 아파트를 분양하는 모델하우스가 생겼으며 가정에 TV라는 정보매체가 끼어들면서 수많은 생활제품의 새로운 모델들의 광고가 피부에 와닿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물보다는 모델을 보고 구입하게 되고 몇년도 모델이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모델과 광고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광고는 광고만으로서가 아닌 광고적 수준을 자꾸만 만들어 우리는 광고를 이해하기에 바쁜 상태이며, 광고나 기호 속에 들어갈 수 없으면 왕따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와 있다. 그래서 옷에 붙은 상표를 밖으로 보이게 입고다니는 지경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제 진짜냐 가짜냐 하는 이분법적 차이는 소멸되고 카오스상태 즉, 내파된 황홀경(현실감이 없는)에 빠져 재현과 현실사이의 구분조차 모호해지는 상황이다. 메세지 또는 정보의 의미는 해체되고 다만 의미없는 메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 냄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황홀경만이 남게 된 것이다.

 가짜를 이제 가짜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화적 기호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자동차 범퍼는 쇠붙이였으나 이제 자동차 범퍼를 플라스틱이 아니고 철판이라고 한다면 아이들도 웃을 것이다.

 찍어내면 낼수록 원본에서 멀어 지면서 결국 원본은 사라지고 모사품만이 남는 앤디워홀의 작품처럼, 가까이 가면 핀트가 맞지 않아 물체가 흐려보이는 과도실제의 하이퍼리얼리즘의 작품처럼 우리의 현실은 모호한 상태에 와버렸다. 그렇다면 하이퍼 작품의 감상법처럼 가끔은 좀 멀찌감치서 현실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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